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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先在)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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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3,076 2002-02-16 14:33

선재라는 말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격적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인격적인 상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도 계속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나 이 세상에 태어난 후나 동일한 인격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이나 탄생하신 후나 또 부활 승천하신 후나 그 인격과 의식에 있어서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님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만일 후생이 전생과 인격과 의식에 있어서 연속성이 없다면 이는 선재도 아니고 전생도 아닙니다.
언젠가 전도회 기간에 우리 전도 대원들이 길 가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도회에 참석하도록 권하다가 불교 신자인 여고생과 토론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고생은 전도 대원들에게 강권을 받자 괴로운 얼굴로 독백하였습니다.
"아이구,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오늘 이런 고통을 당하지?"
나는 이 말을 받아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학생, 학생은 전생을 믿어요?"
"그럼요."
"그러면 전생의 학생과 지금의 학생 사이에 의식의 연결이 있어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학생이 전생에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전생에 사람이었다든지, 혹은 소나 개였다든지 하는 의식이 연속되어 기억이 되느냐는 말입니다."
"아니요, 전혀 모르지요."
"그러면 전생은 전혀 학생의 현재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학생은 지금 학생이 태어나기 이전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만일 전생이 있었다고 해도 그건 전혀 학생과 상관없는 어떤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여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피해 갔습니다.
이런 것은 결코 전생도 선재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에 계신 것을 전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재입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당신 자신이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의식은 온전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3:11~1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6: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처럼 선재(先在)하셨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당신이 사람되어 세상에 탄생하실 것을 스스로 계획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야로써 세상에 탄생하실 일에 대하여 자세히 예언하게 하시고 예언된 대로 세상에 오시므로 예수님이 진정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세상으로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예언 중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몇 가지를 찾아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탄생하실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십니다(창3:15).
처녀에게서 탄생하십니다(사7:14).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십니다(시132:11,12 렘23:5).
둘째, 탄생하실 장소에 대한 것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십니다(미5:2).
셋째, 탄생하실 때에 대한 것입니다.
70주일 기간 중에 69주일 끝에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단 9:25).
이 외에 생애에 대한 것과 대속하시는 사업에 대한 것들 등,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미리 계획하시고 예언하신 것은 당신이 선재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재 하면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인 사람은 인격적으로 선재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을 스스로 계획하여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 하는 일에는 우리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르게 계획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 해야 하는 내가 중생 하기 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은 자가 되었으나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집행 유예가 되어 중생 하여 영생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아담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무엇을 할 때 전적으로 사람 자신이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라서 나쁘지 않지만, 구원받는 일에도 사람의 공로가 있어야 구원받는가 하여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을 바르게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돈을 버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해 주는 것이 아니지요. 이 말에 대하여도 동의하지 않으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여 돈을 벌게 해 주시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하겠지요. 그런 주장에도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돈 벌 일은 사람이 하지 않습니까? 장사를 한다든지, 회사를 경영한다든지,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닌다든지, 하나님이 사람 대신 이런 것을 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생명과 능력과 지각(知覺)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따를 결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런 일에 대하여 경고한 바가 있습니다.

신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요일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知 覺)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찍 다윗이 고백한 대로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할 몫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몫이 있는가? 만일 인간의 몫이 있다면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는가? 아무리 작더라도 인간이 담당한 몫이 있는데."라는 논리이지요. 이런 말에 대하여 다윗은 정확한 대답을 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요.
에덴 동산에 가보면 이런 것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다만 흙일뿐입니다. 그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라 이름하신 창조주께서 그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생명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아담은 이 모든 가능성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가 행사한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지요. 이런 외람된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은 일찍이 한탄하셨습니다.

겔16:17~19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희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사람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준 선택권을 관리한 것에 불과한데 그 관리할 수 잇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말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를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때가 오면 우리는 그 유예된 사망 집행으로 영원히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서 전혀 없던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로 중생 하는 것은 사망 집행이 유예된 상태로 선재 하는 내가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로 결정하고 그래서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맡기기로 결심하여 중생의 생명을 소유하기로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은 우리의 처지에서 말한다면 중생으로 탄생하신 것과 같다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은 선재 하시는 말씀 하나님이신 그분이 계획하고 하신 일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예수님은 신성으로 선재 하셨지만 우리는 중생 하기 전에 죄인으로 선재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실 것을 스스로 계획하시고 그렇게 오신 것처럼, 우리의 중생도 이와 같은 면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의식을 가진 인격체로 유예 받고 있기 때문에, 즉 죄인으로 선재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굴복하여 중생의 생명으로 태어날 것,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선택 결심해야 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재와 성령으로 탄생하신 사실은 우리들의 이런 면에 대하여서도 본이 되셨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계시에 포함된 의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