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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창조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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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3,332 2002-02-16 14:37


1. 남자를 창조하심

창세기 1장은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役事)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 지구에 관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히 계시합니다.

시33:8,9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 지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알게 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런 말씀들은 성경에 아주 많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이 사실을 그냥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라는 말은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창세기 1장에는 이 "가라사대"라는 말이 11번 나타납니다. 한번은 우리말로 "이르시되"(창1:28)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아마르( )"인데 "말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다"고 기록하였으며,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33:6에는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다"고 기록합니다. "기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힘"입니다. 그러므로 만상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 "기운"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루아흐( )"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대부분 "영"이라고 번역된 말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살리는 영이라는 뜻의 말씀이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힘, 곧 살리는 힘이요, 일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면서 "루아흐"를 사용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서는 "프뉴마( )"라고 합니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으면서 E=mc2 이라는 공식의 설명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힘(E)은 질량(質量, 물질=m) 곱하기 광속도(光速度=c)의 제곱이라는 공식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질에다가 빛의 속도를 제곱한 것을 곱해 주면 그 물질 전부가 힘이 된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m=e÷c2 즉 힘을 빛의 속도의 제곱으로 나누어주면 그것이 물질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물리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과연 그런지 어떤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리를 가르치는 교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어떤 공식은 그 역(逆)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 공식은 그 역이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힘이 물질이 될 수 있지요. 연금술사들이 다른 금속으로 금을 만들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지요. 여기서 발달한 것이 화학인데, 결국 화학적 방법으로는 어떤 금속으로 금을 만들지 못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공식을 적용하면 다른 물질로 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돌로 금을 만들 수도 있고, 나무로도 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금광을 찾아 금을 캐는 것보다 엄청나게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 교수님은 내가 묻지 않은 내용까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시편 33:6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다"고 말했을 때에 "입기운"은 "힘"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기운=힘"이 물질을 이루었구나라고 생각하였거든요. 관연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 천지와 만물이라는 물질이 된 것입니다.
사람도 이 아인슈타인의 원리를 응용하여 힘을 물질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결코 수지맞는 일이 아니므로 하지 않습니다만 아직도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힘을 물질로 바꾸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식물(植物)을 통하여 이루시는 탄소동화(炭素同化) 작용 곧 광합성(光合成) 작용입니다. 식물(植物)의 푸른 잎이 햇빛을 받아서 녹말을 만드는 것은 힘을 물질로 바꾸는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엿새 동안 창조하신 일을 도표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천지창조

첫째날


광명, 빛을 완성하심
네째날

둘째날
궁창, 물
궁창과 물의 생물, 궁창과 물을 완성하심
다섯째날

세째날
땅, 바다, 식물
땅의 생물, 사람, 땅을 완성하심
여섯째날

일곱째날 : 지으신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심, 안식일을 제정함


하나님은 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시고 사람이 그들의 필요를 위하여 더 무엇을 요구할 것이 없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그런 때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이 이렇게 힘을 물질로 바꾸어 주시는 일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생명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완성하신 후에 사람을 맨 나중에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필요를 먼저 완전히 준비하신 후에 그것을 관리하고 사용할 사람을 만드시므로 사람이 만들어야 할 것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완전히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혹시 무엇을 만들지라도 그것은 이미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개조하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전혀 없는 데서 무엇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것을 누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창조해 주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잘 관리하는 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이요 책임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일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일을 자세히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1장에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어떻게 그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름 "여호와"를 사용하시며 계시를 기록하게 하십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여호와의 이름 편에서 이미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장과 2장의 창조 기록 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각각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지방에 있던 창조 설화를 편집자가 한데 모아서 1장과 2장으로 꾸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볼 때 분명합니다.
이제 2장의 사람 창조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설명입니다. 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되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울 것이며 구속의 섭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깊이 읽고 바르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한글 성경에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번역했는데, 더 엄밀히 번역하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해야 합니다. 히브리말로는 "아파르 민 하아다마( )"인데 "아파르"는 "티끌" 혹은 "먼지"라는 뜻이며, "민"은 "---으로 부터"라는 뜻이요, "하아다마"의 "하"는 접두어(接頭語)요, "아다마"는 "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의 티끌로 만드셨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티끌"을 원소(元素)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흙에 있는 원소들로 사람을 구성했다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해석이겠지만 성경에 있는 대로 흙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바른 이해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만드신 후, 그 코에 생기(네샤마= )를 불어넣었습니다. "생기"는 "살리는 기운"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말과 같은 뜻이겠지요. 이 생기를 불어넣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마지막 아담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언제나 살려주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 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태초에나 지금이나 언제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이십니다. 예수께서 첫 사람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아담은 생령 곧 살아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령"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惹起)시키고 있는데, 이 말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줄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혼론과 관련되어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위 영혼불멸론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말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령"이라는 말이 "네페쉬 하야( )"인데, 이것은 "살아 활동하는 존재"를 뜻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0, 21, 24절에 나타나는 바다나, 공중이나, 육지에서 살도록 창조하신 동물들을 "생물"이라고 했는데 이 말도 똑 같은 "네페쉬 하야"입니다. 만일 사람을 생령이라고 번역한 것이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는 말이라면 바다나 육지나 공중에 사는 모든 살아 활동하는 것들도 "네페쉬 하야" 이니, 영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살아서 활동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말씀으로 알아듣는 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사람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실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지혜가 있고, 인격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이 품부된 것입니다. 이렇게 지은 사람에게 이 생기를 불어넣으므로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총명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욥33:4 하나님의 신(루아흐)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네샤마)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32:8 사람의 속에는 심령(루아흐)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네샤마)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지음이 되고 생기로 말미암아 총명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인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사람은 이 지구에서 거룩하신 자를 아는 유일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자가 된 것이지요.
이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한 동산을 창설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각종 나무를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에 기록된 차례대로는 이 명령을 여자는 듣지 못했습니다. 이 명령을 할 때에 여자는 아직 지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은 여자를 짓기 전에 남자인 아담에게 특별히 하신 명령입니다. 이렇게 하신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롬6:23). 그러나 구약성경의 기록을 보면 아직 이 지구에 "죄"가 들어오기도 전에, 또 "죄"라는 말이 나타나기도 전에 "죽음"이라는 말이 먼저 기록된 것을 봅니다. 이제 막 창조된 세계에 아직 죽음이 결코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 죽음이라는 말을 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죽는다"는 말의 실상을 아담이 알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막 창조되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첫 사람이 아마 "죽으리라"는 말의 실상을 몰랐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을 성경에 기록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는 아담이 죽은 후 2500년 이상 지난 후에,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하였습니다. 이 글을 기록한 모세는 죽음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 알고 기록하였음이 틀림없겠지요. 그러나 아마 아담은 그 실상을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은 죽음의 실상을 가장 잘 알고 계셨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아시는 그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계시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계시는 계시를 받는 그 사람이 그 당장에는 모를지라도 계기(契機)가 되면 그 뜻을 알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죽으리라"는 말의 실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담이 죽는 것의 실상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담의 존재의 지대한 중요성을 아담에게 확인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 후로 존재하게 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창조되어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아담의 존재는 아담 안에서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의 총화(總和)라는 것을 강력히 인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계시인 것입니다. 즉 아담이 죽으면 아담 하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아담 안에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된다는 것을 계시하시므로 아담이 자기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중 자애(自重自愛)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셔서 지혜와 총명이 있게 한 사람에게 최소한 네 가지 기능(機能)을 주셨습니다. 혹은 범주(範疇)라고 표현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에게만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욕망(欲望)입니다. 즉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정서(情緖)입니다.

창2:9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다고 한 표현은 사람에게 아름다 운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과 좋은 것을 먹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서 곧 욕망을 주셨다는 뜻이지요.
사실 사람이 존재하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전혀 쓸모가 없는 존재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둘째, 능력(能力)입니다. 즉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할 마음은 굴뚝같은데 할 능력이 없는 것은 얼마나 답답하고 잔인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자유(自由)입니다.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창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任意)로 먹되.

이 말씀에는 자유를 허락하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하고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할 마음이 있고 할 능력도 충분한 데 할 자유가 없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페트릭 핸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자유였습니다.

넷째, 선택권(選擇權)입니다. 혹은 결정권(決定權)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에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한 그 사실을 부인할 자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곧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즉 창조하지 않은 것과 같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욕망도, 능력도, 자유도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강제로 속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잘 사용하므로 영원히 존재하는 행복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만드시고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호6:7 저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아담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아담은 언약을 어겼다고 기록했습니다. 곧 선악과를 먹은 사실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선악과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이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정서, 능력, 자유를 한껏 발전시키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요청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악과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아직 아담 외에 다른 사람이 창조되기 전 아담과 맺은 언약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아담의 존재가 지구에 태어나게 될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언약인 것입니다. 즉 이후로 아담으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창조될 모든 생명 있는 존재는 전적으로 아담에게 의탁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며, 아담의 존재와 생명은 전적으로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께 의탁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시키는 언약이었습니다.
사람의 존재는 자신에게 근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와 그 존재 방법은 사람이 스스로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선악과의 언약은 이 사실을 가르치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수용하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선택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의 피를 받은 것을 스스로 버릴 수 없습니다. 국적을 바꿀 수는 있어도 혈통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혈통을 감사함으로 수용하고 살아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이 혈통을 끊고 없어지든지 그 두 길 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존재와 생명 자체에 대하여는 우리의 선택권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반복해서 말하는 셈입니다만, 선악과를 먹는 것은 창조를 거절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곧 흙이 되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아주 없어져서 전혀 창조 안된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론 욕망도 능력도 자유도 없어지지요.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함으로 수용하여 생명과 존재를 영원히 누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표로 하여 맺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언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든 사실을 불평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입니다. 선악과의 언약은 영원한 보존(保存)의 언약입니다. 이것은 생명과와 함께 주어진 언약입니다. 그가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한 생명과를 자유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 생명과 먹기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존재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이와 같이 언약을 맺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나님은 창조의 육일 동안 매일 하루의 창조를 끝내시고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날에는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좋지 못하니"라는 말씀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보니 돕는 배필이 없어서 좋지 못한 것을 아셨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좋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 왜 남자만을 지으시고 좋지 못하다는 말을 하셨을까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 아담의 생명과 존재의 중요성의 지대함을 아담에게 인식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 때문입니다. 그만큼 아담의 존재는 이 지구에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아담에게 돕는 배필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배려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짐승들을 아담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고 그 이름을 아담에게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담에게 배필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또 하나는 아담이 모든 생물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담과 또한 창조된 모든 생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이름을 주는 것은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의미가 없는 것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다른 피조물들은 아담 즉 사람으로 인하여 의미와 존재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교육이었습니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이 이름을 지을 때에 모든 생물이 다 짝이 있으나, 자신은 혼자인 것을 인식하고 짝의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그의 짝 배필을 지으십니다. 그리고 이 짝을 지으시는 방법은 아담을 지으신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창조하신 것은 결국 아담의 짝이 아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담으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아담이 아담 이외의 모든 사람의 존재와 생명의 근거라는 사실과, 선악과에 대한 언약을 아담과 체결한 것으로 아담의 중요성의 지대한 것을 계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를 이렇게 창조하시므로 또 한번 아담의 지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여자를 창조하심

창2:21~24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것이 여자를 창조한 기록입니다.
아담 곧 남자는 흙으로 빚어 만들었으나, 여자는 아담 곧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든 기록에는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아마 불어넣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여자를 이렇게 창조한 것은 이미 말한 대로 중요한 사실을 아담과 여자, 또한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신령한 계획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창조된 여자에 대하여 신약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고전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났다"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부모에게서 났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무나 명백하여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는 말입니다. 그것은 "나의 형체와 나의 생명 곧 나의 존재가 부모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이 안 계시면 나는 없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와 같이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는 말은 "남자가 없었으면 여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모든 것, 곧 그의 형체와 생명과 그의 존재가 전적으로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두 사람을 만들었으나 두 생명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한 생명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나도록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오직 한 생명뿐입니다. 그것은 아담에게 주신 것이요, 그 생명이 여자에게 나누어 들어갔으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누어 내려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담은 이런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자기에게로 이끌어 오는 사람을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자 또한 아담의 이 표현을 전적으로 동의하였을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라는 히브리말이 "남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2:23에 쓰인 "남자"라는 말이 "이쉬( )"입니다. 그런데 "여자"라는 말은 "이솨( )"입니다. 이 말은 "이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다는 사실을 문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근원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미 본대로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시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 적용되어 반향(反響)합니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이 생명이요 빛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살려주는 영"(고전15:45)이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에게서 아담에게 주어졌고, 그것은 아담에게서 여자에게 나누어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하나요 또한 한줄기로 전달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생명의 일원성(生命의 一元性)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아담의 갈빗대로 창조하심으로 이 생명의 일원성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3. 결혼식과 주례사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아담의 허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결혼식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이 모습은 현재의 결혼식 모습과 얼마나 똑같습니까! --물론 나라와 민족을 따라 다른 풍습이 있겠지만-- 지금도 아버지가 딸을 신랑에게로 이끌어 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을 결혼시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신 말씀은 결혼과 결혼 후의 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그 아내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식에서 주례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것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주례사 안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창조적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복을 주셨습니다.
복은 모든 좋은 것들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신 사실들을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영생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은 여러 가지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시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경은 복을 영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본래 영생하도록 복을 주셨고 사람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런 복을 받은 이름입니다.

창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사람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이름입니다. 얼마나 고귀한 이름입니까?
그리고 이 복은 창조된 두 사람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둘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아담 안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이미 말한 대로 여자는 이미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 아담에게서 형체와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있게 된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생명은 여자에게 주어지고 여자는 그 생명을 받아서 형체를 형성하여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계속하므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런 생육의 법칙을 주시지 않았으면 인류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의 주례사 곧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의 주례사 안에서 저와 여러분은 이미 창조된 것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 이미 창조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린다면 모든 인류는 이미 아담의 허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히7:5,10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을 가졌으나.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창35:11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레위는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셋째 아들이 레위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야곱에게 축복하시면서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허리에서 생육한다는 것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든 사실에 기인(起因)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아담의 허리에 이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이 지구의 모든 사람의 존재와 생명의 중계자 다른 말로 중보(中保)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모든 인류에게 주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없었으면 하나님의 생명이 인류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없었으면 세상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이 지구에 사람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계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려주는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이 있고, 아담 안에 그의 모든 후손이 있습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로부터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것은 곧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순수하고 깨끗한 생명을 가진 영생하는 사람들로 땅을 가득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은 가장 쾌적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숫자를 뜻하는 말이 틀림없습니다. 포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컵에 물이 넘칠 만큼 부어지면 불안합니다. 그런 상태는 충만이 아닙니다. 가장 안정되고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 충만 하라는 말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셋째,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창조된 지구를 상속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관리권을 맡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에게 약속하신 것은 땅의 상속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상속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요. 과연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는 태초부터 사람에게 상속되도록 예비된 곳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에게 축복하신 말씀대로 이 지구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지닌 하나님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계11:15). 예수께서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는 곳도 이 세상 곧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참 백성들에게 상속하도록 예비된 이 지구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첫 사람의 결혼식에서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축복으로 또한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넷째,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아담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창조된 지구의 왕이었습니다. 아직 결혼을 시키기 전, 여자를 만드시기 전에 이미 다스리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이 통치권에 대하여는 시편에도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8:5,6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의 축복과 생육의 법칙과 땅의 관리권과 통치권을 결혼 주례사에서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런 축복을 잘 누리기를 소망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 있기만 하면 오직 행복과 영생이 그들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