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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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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4,007 2002-02-16 14:38
성경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름은 그 이름을 지닌 자의 존재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얻는 것은 존재를 얻는 것이고, 이름을 잃는 것은 존재를 잃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전9:5). 이 말씀은 사람이 존재를 잃어버린 사실을 가리키는 말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전7:1)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9).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아름다우신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사35:2). 이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이름이 "여호와"라고 성경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이름도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이름과 하나님 자신이 온전히 동일시되어 계시되고 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같으며"(사30:27), 이 말씀에 하나님 자신과 그 이름이 온전히 동일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원방에서부터 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인데, 곧 이어 그의 진노, 그 입술, 그 혀 등의 표현은 이름과 실체가 동일시된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아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이 지식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호세아는 4장 6절에서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말하고 6장 3절에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권하는 것을 봐서 분명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기도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라고 말씀하시므로 호세아 선지자의 이 기별을 뒷받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실 아무리 사람을 알지라도 이름을 모르면 그 사람을 모르는 것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알지 못하면 우리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못할 것도 뻔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6823회나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이라는 히브리말 "엘로힘"은 2550회만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에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할까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라는 글자가 나오면 그것을 읽는 대신에 "주"라는 말인 "아도나이( )"라고 읽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여호와"라는 히브리 글자 요드( ) 헤( ) 와우( ) 헤( )는 글자만 있고 발음은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드 헤 와우 헤" 이 네 글자에 아도나이라는 발음에 있는 모음점(母音点)을 붙여서 발음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여호와( )"라는 발음입니다. 이렇게 발음이 만들어진 후에 교회에서 는 이 발음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신학계에서는 이 이름의 발음을 바로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원래 발음이 "야훼( )"라는 것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공동 번역 성경에는 야훼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여호와라는 발음이 익숙하고 친근합니다. 그 발음을 바르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이름이 뜻하는 바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 이름을 모세에게 특별히 계시하시면서 그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는 시내산 기슭에서 양을 치다가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타지만 나무는 타지 않고 불꽃만 보이는 것을 구경하기 위하여 접근했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일을 맡아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1~15).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은 것은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름은 존재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이 질문은 "당신은 어떤 존재입니까?"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름을 말하기 전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대답하시고 그것이 당신의 이름의 뜻임을 밝히신 후에 "여호와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다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말은 "영원 자존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는 근본적으로 "없는 자"입니다. 그 "없는 것"이 "있는 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있게"하시므로 있게 된 것일 뿐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시작에서부터 이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교훈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호와"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억할 표호"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호12:5).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記念)이라고 한 곳은 여러 곳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시102:12).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다"(시135:13).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사26:8). 구약 성경에서 특히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하여 같은 낱말이 "이름"또는 "기념"이라고 번역된 것이 더러 있습니다. "제케르( )"라는 말입니다. 호세아 12:5의 "기념 칭호"와 이사야 26:8의 "기념 이름"은 "제케르"를 번역한 말입니다. 시편 34:4에는 이 말이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5의 "표호"라는 말도 "제케르"입니다. "이름"이라고 번역된 말은 "쉠( )"인데
"제케르"는 "기념"이라는 것이 본뜻인 듯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곧 기념인 것입니다.
이 "기념"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상식으로도 알지만 성경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고 하신 말씀 안에 "기념"의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무엇이 있는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기를 원하실까요?
모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까?"라고 물은 것은 자기를 애굽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실체에 대하여 물은 것입니다. 이런 물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라고 대답하신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계시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이름이 기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제 그것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존재 양식(樣式)의 기념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 곧 "자존자(自存者)"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있는 자"라는 뜻이지요. 이 이름은 우주 가운데 오직 "여호와"라 이름하신 분만이 "있는 자"요 그 외의 것은 없다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이 있게 했을 때 비로소 있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그 존재의 원인과 존재 근거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거룩하신 자"(사5:24, 잠9:10 등)로 불리시는 첫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우리와 전혀 다르십니다. 그래서 거룩하십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쉽게 말하면 "다르다"는 말이 아닙니까? 어떻게 다른지는 이미 아시지요. 우리는 우리의 존재 원인이 "나" 밖(外)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내가 있고 싶어서 있어진 것이 아니요, 스스로 있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에 의하여 있게 된 자입니다. 우주 삼라 만상도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다는 찬미를 영원히 아름답게 들으십니다. 이것은 그의 본질적인 면을 깨닫고 시인하는 존재들이 그분을 우리와 다르다고 고백하는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를 때 "나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진리를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참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원인을 알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 확인 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모르는 사람이며, 근원을 밝히는 족보가 없는 사람이고, 결국 "자신은 없는 자"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알 때에 이런 사실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2. 창조주로서의 기념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 외에는 우주 만상이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존재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창조된 자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으면 자신은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간 개개인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계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후에 자세히 설명되어야 오해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사45: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창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억은 우리로 여호와라 이름하신 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그 분이 경배 받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밝혀 줍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이유는 그분은 창조주요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느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이런 이유로 해서 성경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라고 말합니다.

시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96:8,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이름에 합당하게 경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기념하는 뜻을 헤아려 알 때 이루어지는 경배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특별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 "여호와"가 기념하는 뜻을 사람들이 바르게 기억하고 그를 언제나 경배하였다면 무신론, 불가지론, 진화론 등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여러 가지 학설이 난무하는 것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바 된 사람의 창조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그 창조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확실히 기억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구상의 피조물 중에서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지혜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소위 성경이 여기 저기 흩어져 떠돌던 문서들을 모아서 편집했다고 주장하는 학설은,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없고, 2장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1장과 2장은 각각 다른 지방에 있던 창조 설화인데 훗날에 어떤 편집자가 그것을 모아서 성경을 편찬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도 "여호와"라는 이름의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데서 나온 인간의 학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호와"라는 이름과 그 뜻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의 책인 잠언은 하나님의 칭호를 93회 사용하고 있는데, 87회는 여호와를 썼고, 하나님(엘로힘)이라는 칭호를 6회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조 아담이 이 이름 "여호와"와 그 의미를 기억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어야 옳았습니다. 우리 시조는 지혜를 버렸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의 모든 후손은 처음부터 지혜를 버리고 태어났고 그로 하여 세상은 우상의 서식처(棲息處)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 이름은 그분이 바로 창조주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 칭호인 것입니다.

3. 심판주로서의 기념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최종적 근거입니다.
어떤 존재이든지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그런 주장을 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해 준 존재를 반납하라는 요구를 할 권리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장하는 자에게 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반납하면 그런 주장을 한 자의 존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 자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니, 하나님이 준 존재를 반납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하고 나면 그의 창조된 존재는 없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존재한다고 했으니, 하나님이 창조해 준 존재를 반납하고도 정말 존재하면 그도 여호와가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도 스스로 있는 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결코 자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그와 상관없이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의미상으로 없는 자들일 뿐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존재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처음부터 경고하셨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불가불 그 존재를 반납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가 여호와가 준 존재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판이요, 그 결과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즉 창조 이전 상태로 환원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시조 아담에게 일어난 일로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창3:4~7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과 같이되어"라고 한 말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 없이도 너희는 존재할 수 있다고 속인 것입니다. 여자는 이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으므로 그들이 함께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자가 되었다고 주장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존재와 생명을 반납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이 때는 아담이 죽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죽음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은 그들에게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죽는 다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것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까? 원래 없었는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므로 있게 된 것이 다시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존재하기를 거절한 자들에게, 그 존재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존재를 반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존재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없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지요. 이런 사실은 모든 인격적인 피조물에게 동일하게 해당됩니다. 천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유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찬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여기 계명성(啓明星)이라고 번역된 말은 라틴어에 루치페르(Lucifer)라고 번역되었고, 영어는 그대로 이 말을 고유명사로 받아서 루시훠(Lucifer)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때때로 한글로 루스벨이라고 번역합니다. 루스벨은 최초에 하나님과 같이되려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의 두목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사단입니다.

창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루스벨이나 아담이나 하나님이 있게 한 처소를 떠난 것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이유가 하나님과 같이된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있게 한대로 있기를 거절한 것인데 곧 창조를 거절한 행동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게 한 그들의 존재와 생명의 반납을 요청하시는데 이것이 심판이요 이 결과는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 문제에 대하여는 앞으로 더 자세히 더 많이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이런 진리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기념 칭호라는 말은 얼마나 의미 심장한 계시입니까?

4. 생명과 구주로서의 기념

우주 삼라 만상은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을 의존하여서만 있을 수 있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시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시36:9의 말씀과 요1:4의 말씀은 같은 내용입니다. 우주에 생명을 가진 것들, 곧 천사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간에 그 생명의 원천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생명이요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영원히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생명이 시고 빛이 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뜻하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을 살리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고전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첫 사람 아담이 창조할 때에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 곧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을 지닌 존재로 있을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그는 언제든지 사망인 것입니다.

엡1:1~6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로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딤후1:9,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 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딛1:2,3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하게 된 그 사실을 사람이 외면하고 스스로존재할 수 있는 자라고 주장하는 행동을 했을 때에 사람은 영원한 사망 곧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버리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구원하여 다시 존재할 수 있도록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의 구체적인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사람 뿐만 아니라 만상이 그렇습니다만) 언제든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때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곧 여호와가 우리의 유일한 존재 근거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실을 사람이 존재를 잃어버렸을 때 예수께서 오시므로 사람들에게 확인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누구든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없이는 존재도 생명도 없음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여호와가 생명과 그의 존재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생명의 존재로 구원되는 것이 이 여호와라는 기념 이름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것은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 예수는 구원하시는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사43:10~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요8:23,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위에 인용한 요한복음에 기록된 말씀들은 이사야 43:10~13에 나타난 구원하시는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원하시는 여호와가 "그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이 구원하시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죄 가운데 있으며 그 죄 중에서 망할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 안에서 비로소 우리가 있고 살아갑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셨으며, 인간이 무존재가 되었을지라도, 그가 구원하는 여호와로 오셔서 여호와 안에서만 살며 기동하며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과 영생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은 그분의 실체에 대하여 물은 것이며,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계시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계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라는 이름이 가진 기념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 여호와는 창조와 구속의 모든 것을 포함한 이름이며, 하나님이 이 이름을 발표하셨을 때에 이 모든 사실을 계시하신 것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굉장한 이름입니까! 여호와는 우리가 대대로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기념 칭호요 표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며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의 진의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여호와라는 사실에 대하여 몇 마디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헬라어 이에수스( )를 우리말로 발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에수스"라는 말은 히브리어 "여호수아( )"를 헬라 글자로 그 발음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의 헬라씩 발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뜻은 동일합니다. 여호수아라는 말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모세가 그의 수종자 눈의 아들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고쳐 주기 전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이름입니다. "호세아( )"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에 여호와라는 이름의 단축형인 "여"를 붙여서 "여호수아"가 된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많은 이름들 중에 그 첫머리나 끝에 "여" "야" 또는 "요"가 붙은 이름은 대부분 "여호와"라는 뜻이 들어가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엘"이 붙은 이름은 대부분 "하나님"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이름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지요. "다니엘"은 "하나님이 심판장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입니다. "요엘"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름 중에 이런 의미의 "여"자가 붙은 이름으로는 "여호수아"가 최초의 이름입니다. 그 이전에는 "엘"이 붙은 이름은 있었어도 "여호와"의 단축형으로서의 "여"가 붙은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들어갈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최초로 붙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의미 심장한 일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인 인류를, 영원한 하늘 가나안의 참된 안식으로 인도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표상 하기 위하여 그렇게 이름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구원자'가 아니라, 바로 "구원하시는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 사실을 이사야 43:10~13에 예언적으로 계시하시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친히 이 사실을 획인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생명이시요 빛이시며 바로 그분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구원하시는 여호와 바로 "그" 이신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