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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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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복음 0 2,802 2007-04-18 19:16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보다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 핵심 되는 내용은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가 남자와 동침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러한 처녀에게 이사야의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였는데, 그는 거룩한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요,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1: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 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現夢)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게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누1:26~35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사실에 대하여 다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말씀이신 하나님 자신이 친히 육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은,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창조주이신  말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세상에 사람으로 탄생하시는 일에 구태여 신성의 다른 위의 조력을 빌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스스로 생명의 씨가 되어 잉태되시고 탄생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바로 이런 사실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요한의 기록과 함께 마태와 누가의 기록을 다 보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들이 거듭나는 방법을 본으로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자존자(自存者)이시기 때문에 사람되어 탄생하시는 것도 스스로 하실 수가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가 태어나게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거듭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생명의 씨가 되어 처녀인 마리아에게 스스로 잉태될 수 있었으나 성령으로 잉태되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중생 하게 하심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 중생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신 것은 말하자면 모태에 잉태하시고 탄생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거듭나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태에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여주시며 동시에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씨로 주셔서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탄생하시는 것이, 우리의 처지에서 말한다면, 바로 중생으로 탄생하신 것이고, 우리는 태어나는 것이 죽은 자로 태어났으나 예수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신 것과 같이 성령으로 거듭나므로 중생으로 탄생하신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올리워진다는 말입니다.
 이미 말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인 우리와 같은 상태로 오신 것이 아니라 중생의 생명으로 탄생하셔서 중생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시고 우리를 성령으로 중생 하게 하셔서 예수님의 거룩한 상태로 끌어올려 놓으시므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중생 했다면 예수님이 사신 것과 같이 능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오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