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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히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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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3,418 1999-12-14 17:07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음이 없다'는 선언보다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요 1:12),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구원의 유일무이한 조건은 오직 믿음이며(행 16:31),우리는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롬 5:1). 그러므로 '믿음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두렵고 절망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느 날 밤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막 4:40). 사람들에게서 '믿음이 없다' 혹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도 보통 일이 아닌데, 믿음의 주인이신(히 12:2) 예수님께로부터 이런 책망을 받았다면 그것은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그런 준엄한 책망을 받아야 했을까요? 이것을 살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하여 오늘 우리의 상황을 살피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마가복음 4:35-41절을 깊이 살펴봅시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제자들과 관련된 다음 몇가지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더구나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는 갈릴리 해변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싫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예수께서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을 때 그들은 순종하였습니다.

둘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한 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예수님이 계셨고, 그들은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셋째, 제자들은 밤새도록 수고와 고생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광풍이 일어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고,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제자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노를 저었고 물을 퍼냈습니다. 그들은 그 밤 동안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넷째,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기적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목전에서 광풍을 잔잔케 하는 능력을 베푸셨고, 제자들은 똑똑히 그것을 목격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믿음이 없느냐"는 준엄한 책망을 들어야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순종했고, 자신과 지속적으로 동행하였고, 밤새도록 열심히 일하였고, 당신의 능력과 기적의 현장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라 말씀하실 까요? 과연 그날 밤 제자들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었으며,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을까요? 시대의 소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데 열중한 그들은 예수께서 선상에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예수를 잊고 있었다.(소망1, 44,45)

제자들의 문제 - 예수님을 잊어버린 것

그렇습니다. 그날 밤 제자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려고 너무 노력한 나머지 그들은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지만 정작 명령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셨지만 예수님을 잊어버렸고, 밤새도록 한숨 안자고 열심히 일하였으나 예수님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는 준엄한 질책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상태를 말하며 '믿음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을 잊어버린 상태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바로 곁에 두고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잊어버렸다

사단의 일

1.복음의 울타리 안에 거하게 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하는 것

2.많은 일을 하게 하면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3.예수님과 아무런 관계없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나 스스로 만족하게 하는 것

피상적인 믿음

나는 아주 많은 무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공언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소유로 여기시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그들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사단은 종교적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도록 조장하였다. 그는 그들이 심지어 예수를 믿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과 그의 부활까지 믿게 되기를 바랐다. 사단과 그의 천사들도 이 모든 것을 모두 다 믿고 두려워 떤다.(초기, 232)

현재 사단은

현재 사단은 시야에서 예수님을 놓치게 하고, 인간을 바라보게 하며, 인간을 신뢰하도록 하고, 인간에게서 도움 받기를 기대하도록 하는 것을 단호한 목표로 삼고 있다.(목사, 107)

그분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죄인이 들림 받으신 구주를 바라보는 일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고,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께 눈을 고정시키지 않고서는 물위를 걸을 수 없었던 베드로처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목사, 107)

실패의 원인

베드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안심하고 걸어갔다. 그러나 자만하는 마음이 생겨 배 위에 있는 자기 동료들을 잠간 뒤돌아다보고 그는 그의 눈을 예수에게서 돌이키게 되었다. …잠간 동안 그리스도가 베드로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그의 믿음은 무너졌다. 그는 빠지기 시작하였다.(소망2, 86)

회복의 비결

그러나 물결이 그를 삼키려 할 때에 베드로는 그의 눈을 성난 물결에서 돌이켜 위를 쳐다보고 예수께 고정시키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즉시 내민 손을 붙잡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다. …눈을 예수에게서 돌이켰을 때에 그의 발디딤은 허물어지고 파도 속으로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소망2, 86-87)

(재림 운동에 참여했던)그들은 왜 실패하였는가?

만일 저들이 저들 바로 앞에서 그 도성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에게 저희 눈을 고정시켰다면 저들은 안전하였을 것이다. 저들은 목표를 잃고 비틀거리며 예수님을 그 시야에서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길에서 벗어나 어둡고 사악한 저 밑의 세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자서, 62 엘렌 화잇의 첫 번째 이상)

유일한 안전

악한 천사들은 그 사람들 주위에 몰려들어, 흑암을 그들에게로 밀려오게 하여 그들의 눈이 주변에 있는 흑암에 가리워져서 예수님을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게 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분에 대하여 불평하게 하려고 했다. 그들의 유일한 안전은 눈을 위로 향하여 고정시키는 것이었다.(증언1 ,200)

허용해서는 안될 일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노력에 도덕적인 능력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범사에 저들의 모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들의 시야에서 떠나게 하는 일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기별1, 295)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들

우리는 쓸데없는 잡담과 험담과 기도의 등한으로 말미암아 단 하루 동안에 구주에게서 떠나가게 되며 그를 찾아서 잃어버렸던 평안을 다시 회복하려면 여러 날을 슬퍼하면서 찾아야 할 것이다.(소망1, 67)

그리스도인들에게 낙담과 번민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사귀는 가운데 예수를 잊어버리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림으로 그가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우리의 영생의 소망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와 하늘 천사들과 분리된다. 이 거룩한 천사들은 구주의 임재하심을 원하지 않고 그의 부재를 허용하는 그런 곳에는 머무를 수 없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자들 가운데 그토록 낙담과 번민이 빈번히 존재하는 이유이다.(소망1, 67)

무엇이 우리의 시야에서 예수님을 가리우는가?

교만, 이기심, 쾌락, 자기 만족, 인간을 신뢰함, 말씀에 대한 무지, 피상적인 믿음, 실천이 없는 신앙, 진리에 대한 무관심, 곧은 기별을 외면함 실제적인 하나님의 임재(보감2, 280-282)

그는 언제나 여호와를 그의 앞에 모셨고,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그의 우편에서 그를 도우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깊이 느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분이었고 그의 생각에 언제나 계시는 분이었다. 오해를 받았을 때, 그리스도를 위하여 위험을 만나고 모욕을 당하도록 요구받았을 때, 그는 앙심을 품지 않고 견디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자기에게 필요한 분, 그의 필요를 따라 자기를 도와주실 분으로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언제나 도와주시는 분이었다.

모세는 실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봐 주신다는 믿음을 자신의 경험에 혼합 시켰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애를 특별히 지도하신 것을 믿었다. 그는 그의 생애의 모든 작은 부분에서까지 하나님을 보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 동기를 헤아려 보시는 분, 마음을 시험하시는 분의 시야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온갖 형태의 유혹에 더럽혀지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했다.

모세는 하나님을 단순히 생각하기만 하지 않았다. 그는 그분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 앞에서 언제나 보이는 분이었다. 그는 그분의 얼굴을 시야에서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구주의 공로가 자기에게 입혀질 것을 믿었다. 모세에게 있어서 이 믿음은 추측이 아니고 실제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요 시험에 견딜 수 있는 믿음이다. 아, 우리는 예수님께 눈을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자주 시험에 굴복하게 되는가!

나의 형제여, 그리스도를 매일, 매시간 친구로 삼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믿음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명상하라. 그분의 성품을 생각하라. 그분에 대하여 말하라. 그대가 자신을 적게 높이면 적게 높일 수록, 그대는 예수님 안에서 높여야 할 것을 더욱 많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을 갖고 계신다. 언제나 여호와를 그대 앞에 모셔라.

이렇게 변하자!

예수님도 사랑하는 사람에서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으로

예수님도 생각하는 사람에서 예수님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예수님도 소유하는 사람에서 예수님만 소유하는 사람으로

주님 한분 만으로(복음성가)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날 위하여 죽으사 날 위하여 사셨네

예수님 내주여 내 중심에 옵소서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옵니다내가 가진 모든것 주님의것 되었고 주님 가진 모든것 나의것이 되었네

예수없는 사업은 성공같되 실패요 예수있는 생활은 만사형통 합니다예수님은 내생명 또한 나의 기쁨 예수없인 내인생 잠시라도 못사네 아침에는 예수로 눈을뜨게 하시고 저녁에는 예수로 눈을감게 하시네밖에 나가 일할때 주님 감독 하시고 집에 홀로 있을때 예수 사랑 한없네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구주를 생각만 해도(찬미 441)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맘이 기쁘니 그얼굴 친히 뵐때야 내기쁨 어떠리이세상 좋은 음악을 다들어 보아도 주이름 보다 좋은것 또다시 없도다주예수 복음 듣는자 새소망 얻으며 그이름 믿고 따르면 늘희락 얻겠네주예수 귀한 이름이 내자랑 되시고 이제로 부터 영원히 내영광 됩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