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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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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3,372 1999-12-14 17:16

하늘 성소의 뜰에서

우리의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


살아 있는 믿음의 세 단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요 1:12; 롬 10:9,10)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김(시 37:5; 잠 16:3; 벧전 5:7)
예수님과 항상 동행함(엡 3:17; 계 14:12)

이 시대에 요구되는 믿음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이다
우리들은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전개될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들의 유일한 안전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이다. 우리의 손은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하며, 우리의 심령은 완전한 진리로 채워야만 한다.(기별1, 87)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개인적 의무이다.(전도, 359)

에녹의 교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에녹의 경험은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경험을 대표한다.(복음, 48)

현 시대를 위한 교훈(복음 교역자, 48-50)
성경에 에녹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가 65세가 되어 첫아들을 낳고 그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다. 에녹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계명을 순종하였다.
첫아들을 본 후 에녹은 생애가 더욱 향상되었고, 하나님과 좀 더 친밀히 교제하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과, 아버지의 보호를 신뢰하는 아이의 단순한 믿음을 보고, 또 자기가 첫아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었을 때에, 그 독생자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여야 할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 때부터 그가 더욱 주야로 묵상한 바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내신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에녹은 환상이나 혹은 계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고 일상 생애의 그 모든 일을 행하는 가운데 동행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도 그에게 할 일이 있었으므로, 그는 결코 속세를 피하여 은둔 생활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가정에서나 혹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에서,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또는 친구나 시민으로서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었다. 에녹은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생애 중에서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일이 많고 어려울수록 더욱 부지런하고 열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는 어떤 정한 시간에 잠깐 동안 사람을 피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계속했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믿음은 더욱 굳어지고 그의 사랑은 점점 뜨거워졌다. 기도는 그에게 있어서 영혼의 호흡이었다. 그는 언제나 하늘 분위기 속에서 생애 하였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죄의 풍조는 더욱 깊어 가고,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으로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그렇지만 믿음의 증인 에녹은 조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경고하며 권고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죄악의

조류를 그치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금과 은을 모으거나 이 세상 재물을 저축하려고 하지 않는 에녹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영원한 보배를 사모하며 천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온에 서 계신 영광의 왕을 보았다. 이 세상의 죄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께서 계신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여졌다. 몸은 아직 땅에 있었으나 믿음으로는 이미 빛의 왕국에 살고 있었다. .300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 청결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하였다. 300년 간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기를 원하였으며, 점점 그 교제가 두터워져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턱에 서 있었으며 그와 축복의 땅과의 사이는 불과 한 걸음뿐이었다.
드디어 하늘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오랫동안 행해 오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어, 마침내 그는 인간들 중에서 최초로 하늘 성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5).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제를 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에녹의 성품이 거룩하였던 것처럼,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구원받을 사람들의 품성도 거룩하여야 한다.

주여 옛날 에녹같이(찬미 534)
주여 옛날 에녹같이 주와 동행 원하오니
길 험하고 거칠어서 행할 길을 모를때에
나의 손목 잡으시고 나와 동행 하옵소서
공중 에는 바람일고 땅에 원수 가득하여
나의 앞에 덫을놀때 홀로 가기 두려우니
풍랑 순케 하시던주 나와 동행 하옵소서
주께 내몸 맡기오니 세상 쾌락 구름같네
십자 깃발 날리면서 용감 하게 나가리니
시온 성문 갈때까지 나와 동행 하옵소서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1.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참으로 하나님이신가? 참으로 사람이신가? 참으로 구세주이신가? 참으로 믿을만한 분인가?
2. 그분이 약속하신 시간을 알아야 한다(예언 연구를 통하여)
언제 오셨는가? 언제 죽으셨는가? 언제 하늘로 가셨는가? 언제 사역의 변경이 있었는가? 언제 다시 오시는가?
3. 그분이 계신 장소를 알아야 한다(성소 기별을 통하여)
과거에 어디에 계셨는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미래에 어디에 계실 것인가?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
성소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분명히 보여 준다.
성소는 예수님이 인류의 구속을 위해 언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정확하게 보여 준다.
성소는 예수님이 인류의 구속을 위해 어디에서 무슨 봉사를 하시는지 분명히 보여 준다.
이것이 하늘 성소의 기별이며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사단은...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는 공중에 날아가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것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의 사업을 표상 한다. …사단은 이 기별들의 주변에 그림자를 던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기별의 의미와 시간과 장소를 분명히 분별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별들은 시간이 존속하는 한 살아 있어 우리의 신앙적 경험에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증언6, 30)

뜰에서 만나는 예수님
하늘 성소의 뜰은 어디인가? 언제 뜰로 오셨는가?
뜰에서 무엇을 하셨는가? 언제 뜰에서의 봉사를 마치셨는가?
우리는 뜰에서 무엇을 경험하는가?

세상 - 하늘 성소의 뜰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1,2)
지팡이 같은 갈대와 척량 -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 - 하늘 성소(지상 성소는 서기 70년에 이미 파괴되고 없었다)
그 안에 경배하는 자 - 하늘 성소를 바라보며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방인에게 준 성전 밖 마당(바깥 뜰) - 지구

하늘 성소의 뜰 - 이 세상
우리는 지금 우리 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스러운 소망을 바라보며 바깥뜰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엘렌 화잇, 시조 1899.6.28)
이 땅은 지상 성소의 뜰에서 표상된 모든 일이 실제적으로 성취된 커다란 원형적인 뜰이다(스티븐 N. 헤스켈, 십자가와 그 그림자 178)

구속의 경륜
구속의 경륜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이 아니었다. 이 경륜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알게 하신 그 비밀 (롬 16:25)의 계시였다. 이것은 영세 전부터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어 온 원칙을 공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존재하도록 정해 놓지는 않으셨으나 죄가 존재할 것을 내다보시고 그 두려운 비상 사태를 위하여 대비책을 세워 놓으셨다.(소망1,13)

뜰에 오시기로 선택하심
이것은 자발적 희생이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머물러 계실 수도 있으셨다. 그는 또한 하늘의 영광과 천사들의 경배를 보유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 주시고 멸망해 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왕위를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우주의 보좌에서 내려오기로 선택하셨다.(소망1, 14)

뜰에 오실 시간과 장소가 공개됨
뜰에서 이루실 사역의 최종적 목표가 공개됨(창 3:15)
탄생하실 장소가 공개됨(미 5:2)
나타나실 시간과 돌아가실 시간이 공개됨(단 9:25-27)
이로써 메시야를 기다리고 그분의 오심을 진심으로 준비하는 자들은 오해함이나 실망함이 없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관심한 자들은 결코 메시야를 만나지 못하였다.

뜰에서 하신 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하여 뜰에 오셨다

갈바리 - 하늘 성소의 번제단
서기 31년 봄에 참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에서 제물이 되셨다.(선지, 462)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그분은 잃어버린 세상을 위하여 무한한 구속의 대가를 지불하셨다.(증언5, 603)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쳐 오는 빛은 오늘날 뚜렷하고 밝은 빛을 비추어 우리의 속죄 제물 되시는 예수님을 드러내 주고 있다.(보감2, 279)
인간이 범하는 어떤 죄든지 갈바리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열렬한 호소로서 계속적으로 죄인에게 철저한 속죄를 제공하고 있다.(기별1, 389)

갈바리에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셨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예수님의 죽음의 원인
그러나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은 창에 찔렸기 때문도 아니고 십자가의 고통도 아니었다. 죽음의 순간에 큰 소리로 부르짖으신 것과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온 것은 그분이 심장 파열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분의 심장은 정신적 고통에 의하여 파열되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인하여 죽임을 당하셨다.(소망3, 221,222)

대속(代贖)의 죽음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온 인류의 죄를 지심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시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이신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소망3, 204,205)

갈바리에서 지상 성소의 문을 닫으시고 하늘 성소의 길을 여심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1)
모형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원형과 마주쳤다. 큰 희생이 이루어졌다. 지성소로 가는 길은 열렸다. 새로운 삶의 길이 만민을 위하여 준비되었다. 더 이상 죄 많고 슬픔에 찬 인간들은 대제사장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구주께서 모든 하늘의 하늘에서 제사장과 대언자로서 직무를 행하실 것이었다. …이제 죄를 위한 모든 희생과 제사는 끝났다.(소망3, 209)

희생 제물 없이는 성소에 갈 수 없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2,23)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하늘 성소에 합당한 제물을 마련하지 못한다

갈바리에서 예수님은 하늘 성소로 나아가는 죄인을 위하여 더 좋은 제물을 마련해 주셨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하늘 성소로 가는 길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21)

누가 더 좋은 제물 을 얻는가?
예수님은 세상 죄 즉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갈바리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십자가의 공로를 얻는 것이 아니고, 또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늘 성소를 위하여 마련된 더 좋은 제물 을 소유하게 되는가? 지상 성소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다. 지상의 성소로 가 보자.

용서를 위한 죄인의 의무(속죄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레 4:14)
희생 제물과 함께 성소로 가야 한다.(레 4:14)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해야 한다.(레 4:15)
희생 제물을 자기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레 4:15)
제사장에 의해 희생 제물의 피가 성소로 옮겨져야 한다.(레 4:16-19)
제사장이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레 4:20)
죄를 뉘우치는 죄인은 날마다 그의 제물을 성막의 문으로 가지고 와서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의 죄를 고백함으로 그 죄는 상징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흠 없는 희생 제물에게로 옮겨졌다. 그런 다음에 그 짐승은 죽임을 당하였다.(쟁하, 106)

갈바리로 가야 한다
표상적 의식에서 죄를 뉘우치는 죄인이 그의 죄를 죄 없는 짐승에게 전가 시켰을 때 그 양은 죄의 담당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기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벧전 2:24)라고 하였다. 회개하는 죄인이 자기 대신 죽을 대속물을 가져왔던 것처럼 자신의 죄를 인하여 통회하는 모든 사람들은 갈바리로 가야 한다. 거기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갈 2:20)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더 깊은 의미
그러나 갈바리는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희생 제물을 죽였다. 죄인이 그의 죄를 고백하고 대속물에게 그의 죄를 전가시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어린양의 생명을 취하기 위하여 칼을 쥔 손을 올려야 한다. 짐승의 슬픈 눈망울과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예수께 가져 가야하고, 그분의 머리 위에 그 죄를 올려놓아야 한다. 이렇게 한 후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분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된 회개를 찾게 된다.

갈바리의 경험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갈바리 - 회개의 장소
회개한다는 것은 죄를 슬프게 여기고 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죄가 얼마나 가증한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죄를 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죄에서 돌아서기로 작정하기 전에는 우리 생애에 진정한 변화가 생길 수 없다.(생애, 49)
우리가 갈바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속주가 되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해 준다.(생애, 57)

갈바리 - 칭의가 이루어지는 곳 , 성화가 시작되는 곳
만일 그대가 자신을 그분께 바치고 그분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그 때의 그대의 생애가 그때까지 아무리 죄로 가득했다고 할지라도, 그대를 의롭다고 간주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그대의 성품을 대신하고 그대는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일이 없는 사람처럼 가납된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는 그대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그대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것이다.(정로, 62 영문)

칭의와 성화
죄인이 죄의 본질을 깨닫고, 죄를 포기하는 일은 갈바리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칭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이다. 이렇게 함으로 죄인이 성소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경험을 유지하는 것이 성화이다. 복음은 칭의와 성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이 둘은 믿음으로 말미암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로 이루어진다.

칭의 -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능력
주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은 들리움을 받으신 구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관한 소식을 세상을 향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목사, 105,106)

영원한 갈바리
오직 한 가지 기념물은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표를 영원히 언제나 간직하실 것이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와 손발에는 죄가 빚어 놓은 잔인한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 …그분의 굴욕의 표는 그분의 가장 큰 영광이다. 갈바리에서 상한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주님께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능력을 말해 줄 것이다.(쟁하, 344)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가야 할 갈바리는 어디인가?
우리가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공평과 공의가 섞인 자비와 친절과 용서를 발견한다. 우리는 보좌 가운데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 시키고자 손과 발과 옆구리에 고통의 흔적들을 가지신 분을 본다. 우리는 가까이 하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시나 당신의 아들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받으시는 무한하신 아버지를 본다.(행적, 230,231)

우리의 갈바리 - 하늘 지성소
이리하여 예언의 말씀에서 비치는 빛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2천3백 주야의 끝인 1844년에 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대신에 속죄 사업의 마무리를 행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는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살아, 348)
그는 지금 법궤 곁에 서 계시며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상달된다.(초기, 44)
예수께서는 지금 지성소에서 우리의 희생과 기도와 잘못과 죄에 대한 고백을 받고 계신다.(초기, 40)
그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났다.(초기, 258)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우리를 위하여 들어가 (히 6:20)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구속의 오묘를 더욱 밝히 살펴볼 수 있다.(쟁하, 165)

지성소의 예수님은 원하신다
오늘 내가 죄의 가격을 바로 알기를
나의 죄가 그분의 가슴에 무슨 짓을 했는지를 내가 분명히 깨닫기를
나의 죄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나의 죄가 그분의 심장을 터지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이제는 그 엄청나고 흉악한 죄를 포기하고 의로운 당신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양자 택일
죄 짓기를 그만 둘 것인가? 아니면 거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치명적 궤변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죄를 이길 수 없다는 치명적 궤변으로 그들을 속이려고 항상 힘쓰고 있다.(쟁하, 167)

죄가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죄가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 마음에 머물도록 용납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는 큰 손실을 당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를 정복하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를 멸망시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 때문에 갈바리에서 돌아가셨다. 죄를 결코 작은 것으로 생각지 말자.(생애, 74,75)

한 가지의 죄가 할 수 있는 것
회개하지 않은 한 가지 죄는 그대를 향한 하늘 문을 닫기에 충분하다. 예수께서 오셔서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인간이 그에게 죄의 한 오점만 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다(영문시조, 1890.3.17)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도 나는 품성의 결점을 고칠 수 없다 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만일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분명히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실물, 245)

나의 형제들이여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지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엄숙한 기간에 살고 있다. 죄를 지을 시간이 전혀 없다.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것은 언제나 위태로운 일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현 시대에 있어서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세계의 접경에 있으며, 시간과 영원에 있어서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엄숙한 관계 속에 서 있다. 이제 각자 자신의 심령을 살피고, 의의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명한 빛이 모든 영적 암흑을 몰아내고 더러움으로부터 정결케 해 주시기를 간구하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목사,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