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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비유를 통해 주신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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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3,094 2000-10-20 22:21

비유로 가르치심


그리스도께서 비유를 통해 주신 교훈에는 이 세상에 대한 그분 자신의 사명에 나타나 있는 동일한 원칙이 드러나 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과 생애를 잘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 신성(神性)이 인성(人性)을 통해 나타났고 보이지 않는 영광이 보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하여 나타났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늘의 사물이 세상 사물을 통하여 드러났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서도 그것은 사실이다. 곧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 알고 있는 사물을 통하여 설명되었다. 영적 진리가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세상 사물을 통하여 설명되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니) … 이는 선자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마 13:34, 35)고 성경은 말한다. 천연계(天然界)의 사물들은 영적 사물을 설명하는 매개물(媒介物)이다. 천연계의 사물들과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청중들의 생활 경험은 성경에 기록된 진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비유는 사람을 하나님과 연합시키고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진리의 사슬로써 사람들을 천연계로 부터 영계(靈界)로 인도한다.
그리스도께서 천연계의 사물을 실례로 들어 가르치실 때에 당신이 손수 만드시고 친히 특질과 능력들을 부여해 주신 사물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만물이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있을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사상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본향에 살던 당시에는 천연계는 모두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신령한 교훈들로 충만해 있었다. 그들은 눈으로 보고 지혜를 얻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통하여 그분과 교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부부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되자 그분의 얼굴에서 비쳐나오던 광채가 천연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의 지구는 죄로 말미암아 손상되고 더러워졌다. 그러나 만물이 비록 퇴폐한 상태가 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그 가운데 아름다운 면이 많이 남아 있고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실물 교훈이 말살되지는 않았다. 천연계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그들의 창조주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공과를 깨닫지 못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내는 식별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인류의 죄가 만물의 아름다운 표면을 검은 천으로 가리웠으므로 그것들이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대신에 오히려 그분을 숨기는 장벽이 되었다. 사람들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 (롬 1:25, 21) 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람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대신하였다. 천연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신 제사제도와 성경 자체까지도 너무 곡해(曲解) 되어서 그것들이 하나님을 가리는 방편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셨다. 그분은 죄가 천연계의 표면에 드리운 검은 천을 거두고 창조 당시에 그것들이 반사하던 신령한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의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과 천연계의 교훈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했고 그 교훈들이 새로운 계시가 되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아름다운 백합화를 꺾어서 어린이들과 춘소년들의 손에 쥐어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으로 생기 있고 젊음이 넘치는 산뜻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들이 쳐다보고 있을 때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셨다. “들의 백합화가(단순한 자연미로)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그러고 나서 그는 아래와 같은 귀한 보증과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산상설교 중에 하신 이 말씀은 어린아이들과 청년들뿐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근심과 번민이 가득하고 실망과 슬픔으로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군중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다. 그는 계속해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어서 그의 손을 주위에 둘러선 군중들을 향해 펴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마 6:28-33).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백합화와 들풀에게 주신 당신의 기별을 해석하셨다. 그는 우리가 피어나는 모든 백합화와 뾰족뾰족 싹트는 모든 풀잎사귀에서 이같은 기별을 찾아내어 읽기를 바라신다. 그의 말씀에는 확실한 보증이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도록 해준다.
진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생각은 너무나 넓고 그의 교훈은 너무도 원대했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는 데 천연계의 모든 현상이 사용되었다. 날마다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들이 다 어떤 영적 진리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천연계는 구주의 비유들로 덮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공중 전도 사업 초기에 그리스도께서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무나 단순하여서 모든 청중이 다 구원을 얻게 하는 진리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리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므로 속히 그 진리를 빼앗겨 버렸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마 13:13-15).
예수께서는 질문을 이끌어 내고자 하셨으며 주의성 없는 자들을 각성시켜서 그들의 마음에 진리를 새겨 주고자 하셨다. 비유로 가르치는 일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 사이에도 널리 유행되었고 호평을 받고 관심을 끌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교수 방법을 사용하실 수는 없으셨다. 청중들이 영적 사물을 참으로 알고자 했었더라면 그들은 그의 말씀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진정으로 진리를 알려고 하는 자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비유로 가르치신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전해야 할 진리를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의 교훈을 일상 생활의 경험과 천연계의 장면들과 연결시킴으로 그들의 주목을 끄시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 후에 그들이 그 교훈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된 실물들을 보게 될 때에, 거룩한 교사의 말씀을 회상(回想)하게 되었다. 성령께 마음문을 열어 놓는 자들에게는 구주의 교훈의 깊은 뜻이 더욱더 공개되었다. 신비하게 여겨지던 것이 분명하게 되고 이해하기 어렵던 것이 확실하게 이해되었다.
예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실 통로(通路)를 찾고 계셨다. 그는 여러 가지 실례를 사용하심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진리를 제시하셨을 뿐 아니라 여러 같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셨다. 그가 사용한 실례들 모두가 그들이 일상 보고 듣는 현장에서 인용된 것이었기 때문에 청중들의 흥미는 더욱 고조되었다. 구주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아무도 자기가 등한시되었다거나 잊어버린 바 되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아무리 비천하고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의 가르침 속에서 친절하고 동정 어린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비유로 말씀하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를 두른 많은 무리들 중에 제사장과 랍비, 서기관과 장로들, 헤롯당과 관원, 세상을 사랑하는 자, 완고한 자, 야심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정죄할 어떤 죄를 찾고자 했다. 또 이들의 밀정(密偵)들은 매일같이 예수님의 뒤를 밟으며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 중에서 그를 정죄할 어떤 구실을 찾아내어 지금 온 세상을 모두 자기에게로 이끌어가는 듯이 보이는 그를 영원히 침묵시키고자 하였다. 구주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기질을 아시고 진리를 전하실 때에 그들이 산헤드린 앞에 고소할 조건을 잡지 못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는 비유로써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외식(外飾)과 악행을 견책하셨고 비유의 말씀으로써 골수를 쪼개는 듯한 진리를 싸셨다. 만약 그가 노골적으로 공박(功駁)하셨더라면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즉시 그의 전도 사업을 제지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밀정들이 손을 쓰지 못하게 하시는 한편 오류가 밝히 드러나도록 진리를 천명(闡明)하셨으므로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그의 교훈으로 유익을 받았다. 하나님의 지혜와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이 그의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천연계와 일상 생활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웠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롬 1:20)는 것이다.

비유를 통해 주신 구주의 교훈에는 참된 고등교육(高等敎育)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원(深遠)한 과학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열어 보일 수 있으셨으며 수세기에 걸쳐서 수고하고 연구하여야 겨우 통찰할 수 있는 신비들을 드러 내실 수도 있으셨다. 그는 또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있게 될 모든 발명을 착상(着想)하고 자극할 풍부한 과학 분야의 암시를 제공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그같은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는 또 세속적으로 위대하게 될 수 있는 문을 열어 줌으로 사람들의 야심을 만족시키거나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의 모든 교훈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접촉시키는 데 있었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그의 사업에 대한 인간의 학설을 연구하라고 지시하지 않으셨다.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과 그분의 말씀과 섭리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추상적인 이론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품성 계발에 요긴한 문제와 하나님을 아는 능력을 증대시키고 선을 행할 능력을 증가시키는 문제를 말씀하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상 생활에 관계되는 진리를 말씀하신 동시에 영생을 붙잡게 하는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교육을 지도하셨다.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에 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예수께서는 당신이 친히 주신 교훈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이 명령을 성취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율법과 원칙의 높고 아름다움을 잘 나타낼 수 있을지를 보여 주셨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특별한 대표자가 되도록 훈련시키실 때에 그들의 거처를 산과 골짜기에 두도록 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들이 가정생활과 종교적인 의식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천연계와 하나님의 말씀에 접하도록 하셨다. 예수께서도 그처럼 그의 제자들을 천연계의 사물들이 잘 보이는 호숫가나 산기슭이나 수풀에서 가르치셨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은 그리스도께 배우는 동시에 그분의 사업에 그분과 협력하여 일함으로 그들이 받은 지식을 응용하였다.
이와같이 우리들도 피조물을 통하여 창조주와 친숙해져야 한다. 실로 천연계는 위대한 교과서이므로 우리는 이 책을 성경과 연관시켜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가르쳐 주고 잃어버린 양들을 하나님의 우리로 인도하는 일에 사용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연구할 때에 성령께서는 그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하신다. 이러한 깨달음은 논리적 추리에 의하여 얻어지는 깨달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거나, 우리의 눈이 그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졌거나, 우리의 귀가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교훈의 깊은 뜻을 더 잘 파악하게 되고 성경 말씀의 숭고하고 신령한 진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천연계로부터 직접적으로 얻는 이러한 공과에는 그것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단순성과 순결성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원천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아야 한다. 천연계의 미 그 자체가 우리의 심령을 죄와 세속적 매력에서 떠나게 하여 순결함과 화평함을 추구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인도한다. 연구자들의 마음은 너무나 자주 사람들의 이론과 가설과 소위 말하는 거짓되이 일컫는 과학과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천연계와 밀접히 접촉할 필요가 있다. 그들로 하여금 천연계와 그리스도교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심을 알게 하라. 그들로 천연계와 영적 사물들 사이에 있는 조화를 보도록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그들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들이 품성 형성에 필요한 공과가 되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 정신력이 강해지고 품성은 계발되어 온 생애는 고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목적은 안식일 제정의 목적과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그의 창조력의 기념으로써 사람에게 주셨는 데 이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그의 손으로 만드신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안식일은 우리에게 만물 가운데서 창조주의 영광을 발견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의 귀중한 교훈을 천연계의 아름다움과 결합시키셨던 것이다. 우리는 이 성일(聖日)에 다른 어느 날보다도 하나님께서 천연계 속에 기록하신 기별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구주의 비유를 그가 말씀하신 현장, 곧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들과 숲과 풀과 꽃들 사이에서 연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천연계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임재를 실재적(實在的)으로 느끼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당신의 평화와 사랑을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훈을 안식일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일하는 평일과도 연결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을 마련하셨다. 즉 밭을 갈고 씨 뿌리는 일과 곡식을 가꾸고 거두는 일을 통해서 그는 우리의 마음 밭에서 일어나는 당신의 은혜로운 사업이 예증되고 있음을 깨닫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신다. 이와같이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유용한 일상 업무와 생애의 모든 교제를 통하여 우리가 거룩한 진리의 공과를 배우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매일의 수고에 우리의 정신을 빼앗겨 그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일들이 항상 우리의 창조주와 구주를 생각나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생각이 우리의 모든 가정 생활의 자질구레한 일과 업무를 통해 금실처럼 이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얼굴에서 비취는 영광이 우리를 위하여 다시금 만물에 깃들 것이며 우리는 항상 하늘의 진리에 대한 공과를 배우게 될 것이고 그분의 순결한 형상으로 닮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사 54:13)요, 우리가 그 곳에 있도록 부름을 받은 숙명적 환경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전 7:24)는 특권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