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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자와 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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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진 0 4,523 2000-10-20 22:26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복음의 씨는 가끔 가시떨기와 잡초 속에 떨어지는 수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덕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종래의 습관과 행위와 죄된 생애를 버리지 않고, 또한 사단의 특성들을 심령 속에서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발아된 씨는 질식될 것이다. 가시가 돋아나서 그 곡식을 덮어 마침내 다 죽게 만들 것이다.
귀한 진리의 씨를 받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는 마음속에서만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잘 자라날 수 있다. 죄의 가시떨기는 어떤 땅에서든지 자란다. 가시떨기는 가꾸어 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곡식은 반드시 잘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찔레와 가시는 언제나 빨리 자라게 됨으로 제초하는 일이 늘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지배하에 두지 않거나 성령이 끊임없이 품성을 세련시키고 고상하게 하지 않으시면 옛 습관은 우리의 생애 속에 저절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비록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으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결되지 않으면 저희의 고백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죄를 이기지 않으면 죄가 저희를 이기게 된다. 가시떨기를 잘라 버렸을지라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그것이 다시금 속히 자라서 그 덩쿨이 영혼을 덮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심령을 위태롭게 하는 일들에 대하여 주의를 주셨다. 마가는 그것들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욕심과 다른 모든 물욕이라고 말했고, 누가는 이 세상의 염려와 부와 쾌락을 열거하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영적 씨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사람의 심령이 그리스도께로부터 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그의 영성은 사멸해 버린다.
“세상의 염려”.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막론하고 세상의 염려로 시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고역(苦役)과 빈곤과 궁핍의 염려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또 무거운 짐이 된다. 부자에게는 재물을 잃어버릴 염려와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의 꽃에서 배우라고 그분께서 당부하신 공과를 잊어버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보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짐을 그리스도께 맡기지 아니하므로 그분은 저희의 짐을 지실 수 없다. 그리하여 생활의 염려가 그들로 그리스도께 가서 도움과 위안을 얻도록 하는 대신에 그것들이 오히려 그들로 그분에게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힐 수 있는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로 그들의 모든 정력을 그들의 사업에 바치게 되어 자연히 영적 사물을 등한히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게 한다. 성경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롬 12:11)라고 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을 위하여 응분(應分)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해야 하고 사업에도 종사하여야 한다. 저희는 죄를 짓지 않고서도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에 너무나 열중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도, 성경을 연구할 시간도 없고 하나님을 찾아 섬길 시간도 없다. 때때로 그들의 심령이 성결하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떠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다. 영원한 사물은 부차적이 되고 세속적인 사물이 으뜸으로 삼아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심령의 활력이 세속의 가시떨기를 자라게 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과는 전혀 같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과오에 빠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지만 저희의 임무가 너무 무겁고, 책임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시간이 없을 만큼 분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떠남으로 인해 저희의 생애에 그분의 은혜가 결핍되어, 자기 자신의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봉사는 남보다 높고자 하는 욕망과 제어되지 못한 거칠고 추악한 성벽으로 인하여 더럽혀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봉사가 실패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이며, 사업의 결과가 미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리의 유혹”. 재물에 대한 사랑에는 사람을 호리고 기만시키는 힘이 있다. 흔히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저희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신 8:17)고 말한다. 저희의 재물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는 대신에 저희 자신을 높이게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는 동시에 저희 동포들에 대한 의무감마저도 잊어버린다. 저희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향상을 위하여 주어진 달란트로 여기는 대신에 그것을 자신들을 섬기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사용된 재물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특성을 계발시키는 대신에 사단의 특성을 조장한다. 그리하여 말씀의 씨는 가시떨기에 덮이어 기운이 막히게 된다.
“이생의 … 일락”. 자기 자신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추구하는 오락에는 위험이 있다. 체력을 약화시키고, 정신을 흐리게 하며, 영적 식별력을 마비시키는 모든 방종의 습관은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벧전 2:11)이다.
“기타 욕심”. 이것은 그 자체가 죄악적이 아니라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보다 다른 무엇을 더 귀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든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께 대한 애정을 빼앗아가는 것은 영혼의 원수가 된다.

젊은이의 기름진 마음밭
한창 자라나는 원기 왕성한 청년 시절에는 자기 중심적인 야망과 자기를 섬기고 싶어하는 커다란 유혹을 만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세속적 사업의 성공으로 인하여 양심을 마비시키고 참으로 훌륭한 품격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 계속 빠져들어 갈 수 있다. 그리하여 환경이 이를 조장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방향으로 자라가게 될 것이다.
자녀들의 발육기에 있어서 부모들의 책임은 실로 크다. 부모들은 청년들이 인생과 인생의 참된 성공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도록 올바른 감화로 그들을 두를 수 있도록 연구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자녀들의 세속적 번영을 첫째 목적으로 삼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친구를 택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러한 목적을 참작해서 선택한다.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가정을 대도시 속에 두고 자녀들을 유행이 난무하는 사회로 안내한다. 그들은 자녀들의 주위를 속화(俗化)와 교만을 조장하는 감화로써 둘러싸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결과로 그들의 마음과 정신이 쇠미해질 뿐 아니라 높고 고상한 인생의 목적도 잃어버린다. 영생을 상속할 하나님의 아들과 딸될 특권을 세속적 이익과 바꿔 버린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향락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족시켜 줌으로 그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려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로 온갖 운동 경기를 하도록 허락하고 재미있는 각종 연회 장소에 가도록 허락할 뿐 아니라 허식(虛飾)과 자기 만족을 위하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쾌락에 대한 욕망은 빠져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강렬해져서 급기야는 그들의 흥미가 이 곳에만 쏠리게 되어 그것을 인생의 원대한 목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게으르고 방종하는 습관을 갖게 되어 거의 견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할 교회까지도 오락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을 조장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종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자금을 모금할 때 많은 교회들이 어떠한 방법을 쓰고 있는가? 바자회와 만찬회와 자선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경품 뽑기와 그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거룩히 구별된 장소가 먹고 마시는 일과 사고 파는 일과 온갖 놀이로 그 신성성이 더럽혀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리하여 예배당에 대한 존경심과 예배에 대한 경건함이 청년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져버린다. 자제의 방벽은 약해지고, 이기심과 식욕의 방종과 허식을 사랑하는 일이 그들의 마음을 끈다. 그것들은 방종될수록 더 강해진다.
도시는 쾌락과 향락의 중심지가 되어 있다. 많은 부모들이 도시가 저희 자녀들에게 유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위하여 도시 생활을 선택하지만 마침내 실망하게 되고 너무 늦은 다음에야 저희의 큰 실책을 후회하게 된다. 오늘날 도시는 급속히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휴일이 나태함을 조장시킨다. 극장에 가는 일과 경마와 도박과 음주와 흥청거리는 흥분적인 오락들이 온갖 욕정을 극도로 자극시킨다. 청년들은 유행의 풍조에 휩쓸려 간다. 자신의 향락만을 추구하는 자들은 조수와 같이 밀려드는 유혹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교적인 오락과 경박한 환락에 몰두하게 되고,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과의 교제가 저희의 마음을 취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한 가지 형태의 방탕에서 다른 형태의 방탕을 즐기도록 인도되어 마침내는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기 위한 좋은 소질과 욕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신앙에 대한 그들의 열망은 식어지고 그들의 영적 생애는 어두워진다. 심령의 모든 고귀한 기능들이 마비되고 사람을 영적 세계와 교통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능력이 저하된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 것이 사실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심령에 상처를 냈고 일생 동안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 선악을 분별하는 데 명민하여야 할 그들의 식별력은 크게 손상을 입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인식하는 데 민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단의 계책도 분별하지 못한다. 위기에 처하게 될 때에 그들은 시험에 굴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일이 너무도 많다. 쾌락을 사랑하는 생애의 결국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모두 파멸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행해지는 인생의 게임에 사단은 근심과 재리와 쾌락 모두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경고가 주어졌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 16). 사람의 마음속을 펴놓은 책처럼 들여다보시는 그분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눅 21:34)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렇게 기록하였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 10).

마음 밭의 준비
그리스도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그 뿌린 결과가 토지의 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모든 경우에 씨뿌리는 자와 씨는 다 동일하다. 그렇게 하심으로 주님께서는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생활 속에서 기대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이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 결과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속한 청중들일지라도 그러한 상태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성령은 늘 사람을 세상 사물에 몰입시키는 마력을 깨뜨리시고 그들로 썩지 아니할 보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주의하고 등한히 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한 결과이다. 좋은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마음이 완고해지고 그것의 성장을 저해하는 악이 자라게 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마음 밭은 잘 갈려져야 한다. 흙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를 통해 잘게 부숴져야 한다. 유해한 사단의 잡초는 뽑아 버려야 한다. 가시떨기에 덮였던 밭은 부지런한 노력에 의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이와같이 선천적으로 악한 성질도 예수의 이름과 힘을 의지하며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렘 4:3)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호 10:12).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이루고 싶어하시며, 우리에게 그와 협력하기를 요청하신다.
씨를 뿌리는 자들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설교를 너무 많이 하고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을 통하는 일은 너무 적게 하고 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가까이 접촉해서 영생에 관한 중대한 문제에 그들의 관심을 일깨워 주도록 힘써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밟혀 굳어진 한 길처럼 단단하여 겉보기에는 그들에게 구주를 소개하는 일이 전혀 허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론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변론으로 설복시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개인적 봉사를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돌 같은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진리의 씨가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씨를 뿌리는 자들도 그 씨가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히지 않게 하고 흙이 얕아 말라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원칙을 잘 배워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가 그들의 생애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들의 품성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들에게는 져야 할 짐이 있고 고쳐야 할 타고난 나쁜 본성이 있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좋은 군사로써 자기를 부정하고 어려움을 참으며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이 큰 축복임을 배워야 한다. 그들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고 그분께 그들의 모든 염려를 맡기도록 가르치라. 그들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들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속적인 쾌락이 그 매력을 잃게 되고 우리를 낙심케 하는 온갖 짐들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진리의 모습이 자기의 일을 하게 되어 묵은 땅을 갈아 엎을 것이다. 땅위에 나와 있는 가시덤불을 자를 뿐 아니라 뿌리까지도 뽑아 버릴 것이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
씨뿌리는 자가 늘 실망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에 대하여 구주께서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은 삼십배가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좋은 땅에 뿌렸다는 것은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써 말씀을 듣고 지키며 인내로 결실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이 비유 가운데 말씀한 “착하고 어진 마음”은 죄가 없는 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음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자는 마음이 착한 자이다. 그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필요를 느끼는 자이다. 그는 진리를 알고자 하고 그것을 순종하고자 진정으로 열망하는 자이다. 어진 마음은 믿는 마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진 마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런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이다.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기 때문에 진리가 저희 마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고의적인 무지와 짐짓 스스로 취한 무분별에 대해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교훈에 마음문을 열고 믿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그는 그들이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을 믿었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좋은 밭으로 표상된 청중은 그분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살전 2:13)으로 받는 자들이다. 성경을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는 자만이 참으로 배우는 자이다. 그는 그 말씀을 인해 떨게 될 것인데 이는 그 말씀이 그에게 생생한 현실(現實)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하려는 자세로 마음문을 열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 한다.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바로 이러한 청중에 속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에게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고 말했던 것이다.
진리에 대한 지식은 사람의 지적 능력보다는 그것을 얻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과 열렬하고 진실하며 단순한 믿음의 여하에 많이 달려 있다.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도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천사들은 가까이 할 것이며, 그들에게 풍성한 진리의 보화를 열어 보이기 위하여 성령이 보내질 것이다.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청중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할 것이며 사단이 자기의 모든 악한 부하를 총동원할지라도 능히 그 말씀을 빼앗을 수 없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는 넉넉치 않다. 성경에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자기에게 제시된 진리를 깊이 명상해야 한다. 그는 열심히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뜻을 알고자 하고 그 거룩한 말씀의 깊은 의미를 맛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웅대한 사상과 순결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고, 구원의 대 경륜에 나타난 그분의 기이한 역사를 연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마음의 순결과 사상의 명료함을 바라는 우리의 욕구가 더욱 고상하고 거룩하게 될 것이다. 거룩하고 순결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심령은 성경 연구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것이다.
“열매맺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선행(善行) 속에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과 생애가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요 5:30)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성경은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고 말한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유전과 후천적으로 이루어진 품성과 생활 습관 등과 충돌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계시된 모든 요구 조건을 다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그의 모든 습관과 관습과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킨다. 그는 유한하고 허물 많은 인간의 말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하면 전혀 보잘것이 없다는 견해를 갖게 된다. 그는 전심을 다해 오직 한 가지 일념으로 영생을 구하게 되고, 모든 손실과 박해와 죽음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리를 순종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내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은 어느 누구도 고난과 시험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환난이 올 때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불안해 하거나 불신하거나 낙망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사건의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없고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분간할 수 없지만 우리의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윽한 자비를 기억하고 우리의 염려를 그분에게 맡기는 동시에 인내로써 그분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투쟁을 통하여 영적 생애는 힘을 얻게 된다. 시련을 잘 견디게 되면 그것이 견실한 품성과 보배로운 영적 미덕을 계발시켜 줄 것이다. 믿음과 온유와 사랑의 완전한 열매는 흔히 풍파와 역경 속에서 가장 잘 성숙된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비를 기다리나니”(약 5:7).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들도 길이 참아 그의 생애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때로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이 열매가 가장 잘 발육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히 생각하며 낙심한다. 그러나 성장하고 결실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이러한 미덕을 계발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굳게 붙잡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 말씀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더욱 강하고 완전한 정신이 우리를 주관하게 될 것인데 이는 우리가 길이 참는 능력의 근원이신 자와 산 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보통 사람과 같은 이기적인 생활을 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이며 그의 품성이 우리의 성품 가운데 재현(再現)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 가 되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