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복음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십자가, 그 오묘

  Trackback

고무진 0 5,614 2002-11-15 22:11

십자가, 그 오묘

기별1 · 십자가의 의미
기별2 · 바울과 십자가
기별3 · 십자가의 신비
기별4 · 바울의 한 가지 주제
기별5 · 십자가의 증언과 승리
기별6 ·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
기별7 · 그리스도인과 십자가


기별 1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 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박히셨고, 그분의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에 찔리셨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우리 인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리고 그대를 위하여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고 선언한다.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거품이 이는 파도 위를 걸으셨으며 귀신들로 떨게 하시고 질병이 물러가게 하셨으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그분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 위에 바치셨다. 이것은 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3DA 755).
우리들은 십자가의 바로 밑까지 가까이 갈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들 자신이 겸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고상하게 드러날 것이다(1SM 411)

* 참 부흥이란?
부흥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소리를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흐느끼는 영혼이 갈바리로 돌아갈 때에만 일어난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셨을 때,
그의 머리 눕혀 둘 침대는 빌려온 것.
성내로 내려 오실 때 타고 오신 나귀는
산 마을 길가에서 빌려온 나귀.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십자가만은 그의 것.

산기슭 풀밭에서 무리를 먹이실 때,
주님께서 떼신 떡은 꾸어오신 조각 떡.
모인 무리 배불리신 물고기 한 접시는
오직 아이 도시락에서 꾸어오신 몇 마리.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십자가만은 그의 것.

무리를 가르치고자 올라타신 그 배는
바닷가 어부들에게서 빌려오신 작은 배.
집도 가정도 없으셨던 우리 주님
쉴 만한 휴식처도 빌려 쓰신 남의 방.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십자가만은 그의 것.

유월절 어린 양 잡수시기 전 날 밤,
무덤으로 가시는 길에 방 한 칸 빌리셨네.
그의 무덤 위하여 동굴 하나 빌린 그들.
그의 시체 감아드릴 세마포도 빌리셨네.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십자가만은 그의 것.

그가 쓰신 가시관은 날 위해 찔린 가시,
이 몸 위해 우리 주님 대신 죽음 당하셨네.
십자가에 달리시고 손발에 못박히심은
나의 죄와 허물을 속해 주려 하심이니,
그가 쓰신 가시관과 친히 지신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그것은 참으로 내가 졌어야 할 십자가!

십자가의 시(詩)
- John Newton
나는 나무에 달린 그를 보았네, 피와 고민에 쌓인 주님을!
그 십자가 가까이 나가 섰을 때 힘없는 눈으로 날 보았네.
나는 영영 그 모습 잊지 못하리 나의 목숨이 다 할 때까지.
그는 한 마디 말씀 없었으나 내 죄를 책망하는 듯하였네.
두 번째 날 보신 주님의 뜻은
내 너그러이 네 죄를 용서하리라.
이는 그대 속전을 치른 피로다.
그대 살기 위해 나는 죽노라.


기별 2 바울과 십자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은 내게 대하여 못 박혀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하여 못 박혀 죽었습니다”(새번역, 갈 6:14).

십자가에 대한 강력한 논증은 죄를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인간을 고상하게 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내주어 수치와 죽음을 당하게 하심으로 나타낸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평생의 연구의 제목이다. 나는 그대에게 십자가를 다시 연구해 보도록 요청하는 바이다(1TT 525).

□ 기쁨의 봉사자 바울
■ 바울의 필생의 사업이 세상에 끼친 결과를 어느 누가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괴로움을 덜어주고 슬픔을 위로하며, 악을 물리치고, 이기주의와 육욕을 버리고 고상한 생활을 하게 하며, 또 영생에 대한 희망으로 생애를 영광스럽게 만드는 모든 선한 감화 중에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가지고 아시아에서 유럽의 남부 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쏟은 숨은 노고에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복된 감화를 사람들에게 끼치기 위하여 하나님의 그릇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있는 생애인가? 그리고, 이런 평생 사업의 결과를 영원한 나라에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또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교육 62).

<바울에 대한> 로저 박사의 평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며, 세계 사상 가장 그 이적이 놀라운 사람이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볼 때에 어떻게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는가에 대해 기이하게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한 분야 이상 전공할 수 없으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흡수할 정도의 위대한 인물로 보인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모두 뛰어난 것이었다. 로마 감옥에서 처형될 때까지 그는 그러했다.”

교회에 대해 가장 공격적이고, 강력한 적이며 가장 가혹한 박해자인 그를 택하여 그가 파괴하려고 하던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도, 심오한 신학자, 설득력 있는 변론가, 지칠 줄 모르는 선교사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기별 3 십자가의 신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몸으로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새번역, 갈라디아서 2장 20절

우리는 십자가의 주위로 모여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명상과 대화의 제목이 되고 우리 즐거움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받은 바 모든 은혜를 우리 마음에 회상시키기 위하여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손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맡기기 위하여 특별한 회합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어서 가나안 방언을 말하고 또 시온의 노래를 부르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신비와 영광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나니 그러하므로 우리는 우리 동포들도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일하여야 할 중요성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다(1TT 345).

내가 은혜를 받았다고 공언하면서 그 은혜가 나를 그 전과 똑 같은 사람으로 남겨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실에 뚜렷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마음은 운명의 변화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 스펄전

바울은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는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로 하여금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게 했습니다. 세상은 바울을 좋아하지 않았고, 바울은 세상에 대하여 찬탄을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서 세상의 아첨과 싫어함을 초월하여 살았습니다. 우리도 역시 이런 마음을 지녀야 하며, 그것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십자가 밑에 나아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 커지면 커질수록 이 세상의 눈부시고 번쩍거리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더욱 생각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사상자 명단에 들게 될 확률이 줄어들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에 이르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입니다. 당신과 저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좌초시키는 유일한 거침돌은 우리가 십자가의 죽음을 한사코 뿌리치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승리합니다. 내가 살면 남는 것은 한 줌의 재뿐입니다.

* 밀알의 교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12:24

* 한 알의 밀알
그는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묻히셨다.
그는 한 알의 밀알로 부활의 아침 땅을 뚫고 나오셨다.
그는 한 알의 밀알로서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밀알을 가진 이삭들이 오늘 세계 도처에 맺혀 있다.
십자가는 사랑을 받지 못하며, 또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린 그분만이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여 준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힌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을 찾습니다. 오직 그런 자들만이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주님의 뜨거운 관심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이 신뢰하고 쓰실만한 인물입니까?


* 부르심
부르심을 들었다.
따라오라! 이것이 모두였다.
금은 낡아가도
내 마음은 그를 따랐네.
나는 일어나서 따랐을 뿐
이것이 모두였네.
부르는 소리 듣는가?
뉘 아니 따르리!


기별 4 바울의 한 가지 주제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 이외에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고전 2:2)
- 십자가가 모든 설교의 중심이 되어야 함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진리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인식하기 위하여는 갈바리의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을 통하여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대들에게 위대하고 장엄한 기념비 곧 자비와 중생과 구원과 대속을 나타내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제시하고 싶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목사들이 하는 모든 설교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 빛은 정오의 해보다도 더 밝았다. 그 빛은 거룩하신 이의 타오르는 영광이었다. 그 빛은 영광과 위엄과 자비와 평화 가운데 계신 모든 능력과 찬양의 근원이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보여 주었다. 그 빛 앞에서 사울은 한없는 수치를 느껴 움추러들었다. 그 빛은 그의 잔악한 마음, 그의 편협한 신앙, 그의 광기, 그의 교만을 폭로하여 그리고 스데반이 죽을 때 보았던 그 빛나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 빛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했고, 모든 세계를 암흑으로 몰아 넣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 보게 했다. 그 빛에 의해 사울의 양심은 마침내 깨어났다. 잘못된 양심으로 기세등등하던 과거의 모든 기세는 꺾이고 가시채를 발길질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그는 알았다. 작렬하는 그 빛은 미래를 밝혀 주는 한줄기 소망을 주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새로 거듭난 사울로부터 나온 떨리는 외침을 들으라! 그 다음 그의 소중한 시력은 회복되었고 그 빛은 계속 장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은 그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로 다시 씩씩하게 나아가게 했다. 불쌍하고 어두운 모든 땅이 하나님의 밝은 빛으로 밝아올 때까지(교육 189).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루려 오신 사업을 완수할 때까지는 숨을 거두지 않으시다가 임종을 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부르짖으셨다.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그분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그로 승리하게 했다. 그분은 정복자로서 당신의 깃발을 영원한 고지 위에 꽂으셨다. 천사들이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온 하늘은 구주의 승리에 개가를 불렀다(3DA 758).

십자가는 바울이 신자들에게 편지할 때에 즐겨 사용하던 주제였다.

그의 서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이야기들로 꽉 차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의 자랑의 능력에 대한 생각과 표현할 길 없는 타오르는 언어들로 충만해 있었다. 그의 마음은 온통 이 생각으로 꽉 차 있어 항상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늘 잊지 않았다. 이는 그가 가르친 교리들과 실제 생활에 대한 권면에 일관된 핵심이기도 하다.
바울은 가장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도 십자가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복음의 대오이며 복음의 모든 풍성함을 지니고 계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너무도 매료된 나머지 예수보다 더 달콤한 어느 것도 그의 펜과 입술에서 흘러나올 수 없었다. 조사에 의하면 바울은 그의 서간들에서 예수라는 말을 500회나 사용했다.
고전 2장 2절은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을 언급했다. 오늘날 이 땅에는 교회도 많고, 말씀도 많으며, 즉 복음은 많으나 복음의 능력이 없는 것은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의 문제(분파, 분쟁)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잘났다고 자랑함에 있다. 고린도의 문제도 여기에서였다. 헬라 사람은 언제나 말의 지혜를 자랑했다. 그런데 바울은 헬라 천하를 다니면서 이 헬라의 방법을 쓰지 아니하고 순수한 십자가의 도를 전했다. 바울은 사람의 지혜는 사람을 멸망하게 하고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을 구원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울의 위대함이다. 영원히 남는 인간의 지혜는 없다고 한다(고전 1:20).

기별 5 십자가의 증언과 승리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십자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십자가의 완전한 의미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할 수 있다(요 3:16).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구원의 학문이다(치료 386).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높이 더욱 더 높이 올린다면 그들의 봉사는 훨씬 더 성공적일 것이다. 죄인들이 열렬히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인도함을 받는다면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세주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동정의 깊이와 죄의 흉악함을 깨달을 것이다(AA 207).

가장 악랄한 적이 가장 큰 친구가 되었다. 박해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재판관 앞으로 끌고와 감옥에 넣을 때, 고소장을 쓰던 그 손이 이제는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편지를 썼다. 한 때는 그리스도인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돌 밑에 깔려 숨질 때 기쁨으로 뛰던 그 심장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해 매를 맞고 돌에 맞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이 예전의 적, 핍박자, 박해자에게서 신약 성서의 대부분과 가장 훌륭한 신학적 진술, 그리고 기독교적 사랑을 노래한 가장 아름다운 시가 나왔다.

질문?

성경과 십자가가 나에게 질문해 오는 것은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혹은 도덕적인 사람이냐?
혹은 윤리적인 사람이냐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성경과 십자가가 나에게 하는 질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창 1:28)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하셨다(사 43:7).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으면 엄청난 죄인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의 최대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신가?
그분을 위해 살며, 나의 최고 관심의 대상이 과연 하나님인가?
범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가?
하나님에게 전폭적으로 복종하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30)


기별 6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놓아주니라.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27:26-30)

우리는 십자가 주위에 모여야만 한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이 명상, 대화,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1보감 286).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그분은 잃어버린 세상을 위하여 무한한 구속의 댓가를 지불하셨다. 그분의 극기와 자아희생, 그분의 이기심 없는 노력, 그분의 굴욕, 무엇보다도 그분의 생명을 주신 것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증거한다(2보감 258).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들 속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처럼 되어야 한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얼마나 놀라운 값이 우리를 위하여 지불되었는가! 십자가와 그 위에 높이 달리신 분을 바라보라. 잔혹한 못에 뚫어진 그 손들을 보라. 대못으로 나무에 고정된 그 발을 보라. 그 고민은 그대의 구속의 댓가이다(3보감 69).
그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자아내게 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당하는 자 중에 제일인자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유해성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 인간이 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죄의 흉악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3DA 752).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 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 박히셨고, 그분의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에 찔리셨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우리 인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리고 그대를 위하여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고 선언한다(3DA 755).
하늘은 살기 등등한 폭도들의 손에 팔려 조롱과 모독을 받으며 이 법정 저 법정으로 급하게 끌려 다니시는 희생제물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그분의 미천한 출생 때문에 그분의 핍박자들이 조소하는 것을 들었다. 하늘은 그분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이 저주와 맹세로 그분을 부인하는 것을 들었다. 하늘은 사단의 광포(狂暴)한 사업과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그의 능력을 보았다. 오! 이 얼마나 무서운 광경인가! 구주께서는 밤중에 겟세마네에서 잡히셔서 이 재판정 저 재판정으로 이리 저리 끌려 다니셨다. 그는 제사장들 앞에서 두 번, 산헤드린 앞에서 두 번, 빌라도 앞에서 두 번, 헤롯 앞에서 한 번 고발을 당하셨다. 그는 또한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정죄를 받으신 다음에 예루살렘의 딸들의 통곡과 잡다한 무리들의 조롱을 들으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하여 나아가셨다.
상처난 관자놀이에서 피가 흐르고 이마는 피땀으로 범벅이 된 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하늘은 슬픔과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그분의 손과 발에서 흐르는 피가 십자가를 세우기 위하여 뚫어 놓은 바위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못 박힌 상처들은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크게 찢어졌다. 그분의 영혼이 세상의 죄짐에 눌려 헐떡일 때에 몰아 쉬는 호흡은 점점 빠르고 깊어만 갔다. 그리스도께서 무서운 고통 가운데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기도하실 때에 온 하늘은 경탄으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해치는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 우주 거민에게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겠는가!(3DA 760).

(제1차 세계 대전의 대학살로 인해 모든 희망이 깨어진 <에드워드 실리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처를 그의 제자들에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것은 그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상처난 예수님> 이라는 시를 쓰게 만들었다.)

상처난 예수님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 결코 찾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당신을 찾습니다.
당신 눈은 어두움을 뚫고 빛나는 우리의 단 하나 별.
우리는 당신 이마 위에 있는
가시에 찔린 자국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 상처받은 예수님이여!
하늘은 우리를 무섭게 합니다. 그것은 너무 고요합니다.
이 모든 우주 안에 우리가 설 곳은 없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 예수여 당신의 상처를 보고,
우리는 당신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만일 문이 닫혀 있을 때, 당신이 가장 가까이로 다가온다면,
그 손들을 보이기만 해 주옵소서.
당신의 그 옆구리를!
우리는 오늘날 어떤 상처가 있는지 알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상처들을 보여주시옵소서.
우리는 그 암호를 압니다.
다른 신들은 강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약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주었지만
당신은 비틀거리며 왕좌로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상처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신도 받지 않는 상처를 당신만이 받았습니다.

기별 7 그리스도인과 십자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1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든 학생들에게 거듭거듭 반복하여 가르치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믿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저들의 연구 과제로 삼으며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지? 최고 학부로부터 최저학년에 이르기까지 교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기 위하여 힘쓰게 할 것이라(부모 1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의 행위의 실제 원칙이며 또 그의 행동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일을 하다가 잠시라도 그의 열심이 줄어드는 듯하면 십자가를 한 번 쳐다봄으로 다시 마음의 허리띠를 동이고 극기의 길로 행하여 매진하였다(복음사역자 293)
너그러운 정신을 하늘의 정신이다. 이 정신이 최고로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에서 찾을 수 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가지셨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구세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자비심에 호소할 것이다. 거기서 예증된 원칙은 주는 것, 주는 것이다(AA 332)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일이 지금보다 더 요긴하였던 때가 일찌기 있었는가? 우리는 어느 정도나 극기를 실천하고자 원하는가?(3보감 360).

“우리는 그의 인내의 모방자가 됩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 그에게 영광을 돌립시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주신 모범이요, 또 우리가 이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폴리갑).

*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유
“동양 선교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스페인 신부 <샤비에르> 왈,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고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만일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을까 두려워하여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예수여!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 나를 껴않아 주셨나이다. 나를 위하여 못에 박히셨고 창에 찔리셨으며 많은 부끄러움을 당하셨나이다. 그러하신 당신을 어찌 사랑치 않으리이까. 수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시여,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은 천국이 그립거나 지옥이 무서워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에게서 무엇을 얻거나 상급을 받으려는 야심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 까닭에 나도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영원한 사랑이신 주여!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을 찬송하오리이다. 사랑하는 주시여,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영원하신 주이시니이다.■(샤비에르의 간증, 고백, 기도, 염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적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코자 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금식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기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시기 원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코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치지 않을 때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의 위로와 축복을 받을 때에만 찬양합니다.
자기의 위로와 만족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주님만을 위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한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항상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이처럼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분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한다.

그날이 오면
그분의 질문에 대답할 참된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날이 오면
그분의 앞에 서 있는 내 손등에
수고의 땀이 있어야 한다.

그날이 오면
그분을 주목하는 내 눈에
이웃을 위해 흘린 내 눈물이 있어야 한다.

그날이 오면
그분이 만지시는 내 몸에
섬김의 상흔들이 있어야 한다.

그날이 오면
그분의 생명책에 그가 부를
내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