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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굴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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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0 2,549 2001-08-31 10:15
3. 사자 굴의 시련

가.시련의 속성과 실제

1)시련의 속성
욥기의 주제처럼 세상에 까닭 없는 시련이 없지만 실상은 까닭 없는 시련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엄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욥이 그 끔찍한 시련을 당한 것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에 대한 사단의 투덜거림에 대하여,[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지켰느니라](욥 2:3)는 하나님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구태여 욥이 시련을 당한데 대한 까닭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었다(1:3, 8). 다니엘이 사자굴의 시련에 처하게 된 것은 전혀 일방적인 것으로 오히려 다니엘에게는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이르러 온 것이기도 했다(6:4). 이 세상에서 의인이 왜 더 많은 시련을 당해야 하는 지의 이유가 밝혀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이며(골 1:24),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함께 당하는 고난인 것이다(벧전 5:9, 고후 1:5).


2)시련의 실제
욥이 당한 고난의 배후에는 욥이 의를 시샘하는 사단의 분노가 있었듯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풀무불의 시련의 경우에도, 그리고 다니엘의 사자굴의 시련에도 동일한 실제가 작용했다. 그것이 곧 마지막 때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는 이유인 것이다(계 12:17).

몇 차례의 엄밀한 국정감사(國政監査)를 통해서도 다니엘을 고소할 만한 여지를 찾지 못한 그의 적수들은 이제 다니엘을 정치적 신분에서가 아니라, 종교적 신분에 의거하여 공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곧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concerning the law of his God) 그를 결부시켜 넘어뜨리기로 하였는데 이 일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첫째로 고발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다니엘의 철석같은 충성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비롯한 다니엘의 신앙생활이 언제나 공개적이었음을 나타낸다. 특히 이 곳에서 [율법]이라고 번역된 낱말은 "다트"(dat)인데 이 말은 왕의 "명령"이란 뜻으로 쓰이거나(2:13, 15) 하나님의 "법"을 뜻하는데 쓰였다(단 7:25, 라 7:12, 14, 21, 26). 즉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행하는 일을 규칙적으로 행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둘째로는 다니엘이 비록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공개적인 종교적 행사를 방해받으면 죽음이나 형벌이 가해지더라도 그의 신앙적 관습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고발자들은 확신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은 평소에도 그의 직무나 지위 때문에 그가 언제나 수행해 온 여러 신앙적인 행사들 즉 안식일 준수, 기도드리는 일, 음식에 관한 관습등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거나 숨어서 하지 않고, 언제나 드러내놓고 떳떳하게 수행했음이 분명하다. 참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언제나 어디에서나 실행한 긍지에 넘친 신앙인이었음을 기억하자. 고발자들의 예상은 적중(的中)하여 과연 다니엘은 그들의 기대처럼 처신했다. 그의 신앙은 원수들까지도 실망시키지 아니한 것이다.


3)자기 숭배의 함정
이리하여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의 머리를 짜낸 탁월한 모의(謀議)는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성공할 것이 분명한 탁견(卓見)을 왕 앞에 급히 펼쳐놓았는데 [그것은 곧 이제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6:7)이었다.즉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30일 신(god for a month)이 되라는 제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의 위치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한다. 면장은 군수가 되고 싶고, 군수는 도지사가 되고 싶어한다. 도지사는 장관이 되고 싶고, 장관은 총리가, 그리고 총리는 대통령 되는 것이 싫지 않은 것이다. 왕이나 대통령은 어떠한가.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마침내는 자신이 신(神)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루스벨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하늘에서의 반역 이후(사 14:13), "하나님과 같이"되라는 속삭임이 최초의 인간을 타락시킨 유혹이었으며(창 3:15), 역사적으로는 황제 예배와 영웅 숭배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사실은 각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 숭배의 보좌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숭배의 함정에 빠진 왕은 지체없이 [메대와 바사(페르샤)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다(6:9). 그러나 왕은 이 법령이 왕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함이 아니요, 충성된 다니엘을 제거하여 자신에게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하는 조신(朝臣)들의 사악한 계교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자기 숭배는 진정한 자기 향상(向上)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함정에 빠진 왕은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였]으나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메대와 페르샤의 법은 일단 반포되면 취소나 변경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자기 숭배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어리석음이다.


나.위대한 신앙인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1)변함없는 신앙
자신이 엄연히 나라의 총리인데도, 신앙과 민족적 이질성(異質性)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저의가 분명한 법령을 통과시켜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살벌한 현실에 처해진 다니엘의 느낌과 처신은 어떠했는가.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초조했는가. 자기 연민(憐憫]이나 비하감(卑下感)의 그림자는 조금도 없이, 더더구나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변함 없이 행동한 것이다.

원수들이 자신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감시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온종일 국무(國務)에 충실했으며, 여전히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으며, 두려워하는 대신 여전히 감사로 가득찬 일과를 보냈다. 세상이 보든 말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는 항성(恒星)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구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봉우리처럼, 다니엘은 인간 세상의 기상(氣象)변화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전천후(全天候) 인간이었다.

서기 155년 2월 23일 안식일, 사도 요한의 제자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Polycarp)이 86세의 고령으로 개회 중인 서머나의 경기장에 끌려 나와 화형(火刑)으로 위협받으며, 총독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는 얼마나 분명한 대답을 했었는가. [나는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 왔는데, 그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한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지 않으셨으니 내가 어떻게 나의 구주이시요, 주님이신 나의 왕, 그분을 모욕할 수 있겠오] 참으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 26:3, 4).


[.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5-8).


느브갓네살 앞에서도, 벨사살 앞에서도, 곧바르게 섰던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찾는 원수 앞에서도, 그리고 종래에는 사자굴에 던지워진 후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꼿꼿이 섰다. 리비에르가 그린 그림 가운데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팔을 뒤로 묶이운 채, 여전히 꼿꼿이 서서 늠름한 자세로 사자들의 포효(咆哮)를 압도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명 깊다. 하늘이 무너져도 굳게 서야 하는 마지막 성도의 귀감(龜鑑)이 아닌가.


2)값 비싼 기도
다니엘에게 이른 치명적인 도전은 바로 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30일 간은 하나님께 기도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니엘은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30일 간 만 기도하는 일을 중지한다고 큰 일이 있겠는가. 아니면 기도하는 자세를 바꾸어 무릎을 꿇고 드러나게 하는 대신 명상으로 대신하거나, 침상에서 은밀히 기도드릴 수도 있지 않는가. 위험스러운 기도를 드리다가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기도를 중지하고서라도 사는 것이, 포로 중에 있는 동족들을 위해서도 더욱 큰 유익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형식을 고집하는 것은 과잉(過剩) 신앙이 아닌가. 그러나

다니엘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다니엘은 금령을 만드는 그들의 악의에 찬 의도를 재빨리 알았으나 그의 행동을 조금도 바꾸지 아니하였다. 그에게 기도가 가장 필요되는 때인 지금에 왜 그가 기도하기를 멈출 것인가. 차라리 그는 생명 그 자체를 버릴지언정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그의 소망을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방백들의 수령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였고 기도의 시간에는 그의 방에 들어가 평상시의 습관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뢰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요하지 아니하였다. 그를 멸하려고 음모하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는 하늘과 자기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나타내는 것 까지라도 허락하고자 하지 않았다](선지자와 왕, 517).

다니엘이 받은 도전은 기도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 32:26)는 모세의 요구처럼, 그리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깊은 뜻이 드러나 있다. 다니엘은 공공연한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야 한 것이다 (롬 10:10).


[이와 같이 선지자는 담대하나 침착하고 겸손하게,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우상숭배자들에게 둘러싸인 다니엘은 이 진리에 대한 충성스러운 증인이었다. 의에 대한 다니엘의 굴하지 않는 집착은 그 이교의 궁정의 도덕적 흑암 가운데 빛나는 밝은 빛이었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인의 담대함과 성실함의 값 있는 모본으로 오늘날 세상 앞에 서 있다](선지자와 왕,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7, 18).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그것은 영적 능력의 비결이다. 다른 어떤 은혜의 수단도 이를 대신할 수 없으며 영혼의 건강을 보존할 수도 없다](GW, 254).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두움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청하실 때에 그 주신 바 특권을 사용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정로의 계단, 76).


[그런데 기도를 게을리하고는 하루라도 한 순간이라도 안전할 수는 없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에는 특별히 기도할 것이다] (각시대의 대쟁투 하권, 349).

죄짓는 사람은 기도하기를 그칠 것이며, 기도드리는 사람은 죄짓기를 그칠 것이다. 다니엘은 이제 자신의 생명과 바꾸게 될 값 비싼 기도, 그러나 가장 위대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신앙에서의 기도의 효능(效能)과 중요성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다니엘에게 기도가 그토록 시급하고 중요했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가.


3)승리의 비결
참으로 메대와 페르샤의 변경할 수 없는 법에 의해 헤어날 길 없는 궁지에 빠진 다니엘은 어떻게 활로를 찾았는가. 그것은 다음의 여건을 구비한 기도였다.


기도의 장소(A Place of Prayer)
다니엘은 기도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기도드렸다. 근동지방의 집들은 지붕이 평평하였는데, 아마도 다니엘은 그의 집에 기도하는 방을 마련했음에 틀림 없다. 베드로도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 갔으며 (행 10:9), 사도 바울도 유럽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 이르러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하여 찾아나섰고, 거기서 기도처를 찾아나온 두아디라성의 자주옷 장사 루디아를 만났다 (행 16:13, 14). 야곱은 그가 하나님과 교통한 곳에 돌베개를 세우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했다(창 28:18).[기도를 습관적으로 늘 하는 곳으로 가서 하도록 기회를 찾으라.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참으로 원하는 자들은 기도회에 참석할 것이요, 또 저희의 의무를 신실히 행하며, 저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얻으려고 열심으로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정로의 계단, 79).

[우리는 가정 안에서 기도할 것이요, 무엇보다도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는 없다.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홀로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 앞에 우리의 심령을 내어 놓을 것이다] (정로의 계단, 80).


기도의 시간 (A Time of Prayer)
다윗 왕은 하루 세번씩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드렸다(시 55:17). 후기 유대인의 전통에서도 하루 세번씩, 제 3 시, 제 6 시, 제 9 시에 기도드렸는데, 제 3 시와 제 9 시는 성전에서 아침과 저녁 희생을 드리는 제사 시간과 일치되었다. 베드로도 제 6 시에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하루 세번씩 기도드린 기록이 나온다.


[생애의 분주한 활동이 그대로 하여금 기도가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때, 기도를 소홀히하게 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업무에 지나치게 골몰함으로써 영혼으로부터 경건을 몰아낼 위험이 있다. 그대가 사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능력과 하늘의 지혜를 영혼으로부터 박탈하는 것은 큰 악이다. 그대에게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빛이 필요하다](5T, 560).

[기도는 그대의 능력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성급한 기도를 드린 뒤 소홀히 여겨지거나 잊혀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사물을 돌보러 급히 달려 나가는 일꾼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그는 다만 급하게 하나님을 조금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는 육신적, 영적 능력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는 곧 지쳐버린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고상하게 하고 고무시키는 감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참신한 생명에 의하여 기력을 얻지 못한다. 그의 지친 몸과 피곤한 머리는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위로함을 받지 못한다] (7T, 243).


기도의 자세(A Posture of Prayer)
다니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그것은 복종과 겸손을 나타내는 자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윗처럼 앉아서 기도드릴 수 있고(삼하 7:18), 엘리에셀(창 24:26)이나 엘리야처럼(왕상 18:42) 엎드리어, 혹은 한나처럼 선 채로(삼상 1:26), 기도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자세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눅 22:41), 에스라(스 9:5), 스데반이 그랬으며(행 7:6, 59, 60), 사도 바울이(행 20:36) 그렇게 기도드렸다.



무릎 꿇는 낙타




날이 저물면 낙타는 모래 벌판에
무릎을 꿇는다.
온종일 지고다닌 무거운 짐을 내리게 하여
휴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아, 해가 지고 한 날이 저물 때
너도 무릎을 꿇으려므나.
그래야 네 주인께서도 네 짐을 들어 내리시고
네게 휴식을 주실 수가 있으시니까.

만약 그대가 짐을 진 채로
온 밤을 지샜다면,
어떻게 할 일이 태산 같은 내일을
내일로 맞이할 수가 있을까.

날이 새면 낙타는 다시 무릎을 꿇어
그의 주인으로 다시 짐을 지우게 한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사막 길을 힘차게 달린다.

나의 영혼아, 먼동이 트거든 너도 무릎을 꿇어,
네 하나님께서 네게 일과를 주시게 하라.
그 분은 네가 지기에 너무 큰 짐을
결코 지우지 아니하실 줄 확신하여라.


-Anna Temple-





예루살렘을 향하여(Toward Jerusalem)
다니엘은 신앙과 인생의 방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온 종일의 분주한 일과에 골몰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때때로 외교(外交)문제와 인사(人事) 행정에 몰두되기도 하고, 때로는 국내 문제와 국가 산업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하루 세번씩 기도드리는 시간이 되면 그의 방향 감각은 정위치(正位置)에 되돌아왔다. 폭풍을 만나 요동하는 배가 이리저리 선체를 가누어도 나침판의 바늘이 정남북(正南北)을 가리키듯, 다니엘의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곳 예루살렘을 향하였다. 떠나온지 70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은 황무한 채 적막만이 드리웠을 예루살렘이 다니엘에게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립고 소중한 약속의 도성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두고 맺어진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때문이었다. 성전이 낙성되었을 때, 솔로몬이 드린 봉헌(奉獻)의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요 언약이기도 했다.


[솔로몬이...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물론하고 끌어간 후에...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돌아와서...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와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대하 6:12-14, 24, 36-39, 25).


바로 이 일을 다니엘이 하였고, 이를 위한 기도를 다니엘이 드린 것이다. 다니엘은 자신이 선지자로 예언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이미 기록된 성경의 허락을 자신이 성취시키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중에 하나님에 대한 더욱 명랑하고 분명한 견해를 가지게 되고, 바라봄으로 우리는 변화된다. 선함과 우리 동포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꾸밈 없는 본성이 된다] (실물교훈, 368, 369).


기도하는 다니엘




페르샤제국이 그의 현명한 통치에 허리를 굽히고,
일백도 넘는 행정구역이
날마다 그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으며,
정원들이 들어찬 여왕 같은 도성이
그를 향해 화사하게 미소했지만,
그의 마음은 멀리 멀리에 있었네.

위엄과 권세를 뒷전에 제쳐두고,
'하루에 세 번씩' 외 딴 방을 찾아가
거기서 그의 위로를 구했네.
서편으로 열려진 창문을 통하여,
저 멀리 멀리에 두고 온 예루살렘 향하여,
그의 기도를 띄워 보냈네.

아침과 한 낮, 그리고 저녁이 어느 새 지나갈 때,
저로 하여금 세상의 헛된 쾌락과
첩첩이 쌓인 근심 걱정으로부터
제 마음의 문을 닫게 하시고
여가를 찾게 하여 주소서.
저기 보이는 저 수평선을 지나
저 멀리에 감추어진 그 복된 도성,
그 하늘의 보화를 향해
제 영혼의 창문들을 활짝 열게 하소서.

-Richard Wilson-



다.위대한 승리

1)철저한 집행- 완벽한 구원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더라](단 6:16, 17).

고발자들의 모함을 뒤늦게 알아 차린 왕은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렀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6:14). 집행을 촉구하는 고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침내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고 입구는 돌을 굴려다가 막았으며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으로 봉해졌다. 이러한 사자굴은 고대 페르샤 왕들이 스포츠로 즐기던 사냥을 위해 사자들을 가두어 둔 장소로 여겨진다. 또한 사자굴을 인봉(印封)한 방법은 고고학에서 발굴된 다른 경우로 미루어 보아, 입구를 평석(平石)의 둥근 돌을 굴려 막은 뒤 가장자리를 석회 반죽을 떡 시루 붙이듯 봉하고, 젖은 석회 위에 원통형 인장을 누르면서 굴리면 부조(浮彫)를 남기게 되어 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왕은 다니엘이 사자들에 의해 해를 받지 않을 경우 고발자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보안조치를 취한 셈이었다. 반면에 고발자들은 왕이 그의 충실한 종을 구출하기 위해 저희도 모르게 다른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의 인(印)도 쳤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원수들이 그를 사자굴에 던져 넣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악한 천사들과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거기까지 이루도록 허락하셨으니, 이는 그 분의 종의 구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진리와 의의 원수들의 패배를 더욱 완전하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진실로 사람의 노(怒)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시편 기자는 증언하였다] (선지자왕, 519).


이리하여 그 날 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은 그의 적수들은 참으로 통쾌한 밤을 보냈고, 다리오 왕은 슬픔에 잠긴 길고도 괴로운 밤을 뜬 눈으로 지샜지만,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가장 안전하고 누구보다도 평화로운 밤을 보냈다. 다리오의 아침 문안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은 그가 [항상 섬기는 ]그의 하나님에 의하여 최선의 보호를 받은 것이다.

다니엘이 보호를 받은 사실은 다니엘 자신의 기도의 응답 뿐만이 아니라, 밤새 금식하며 기도한 다리우스 왕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왕은 기쁨에 넘쳐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리게 했는데, 이것이 변경치 못하는 메대와 페르샤법에 위배가 되지 않았음은 금령의 내용이 범법자를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는 것이었지 죽이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밤을 보내면서도 다니엘에게 상처하나 내지 아니한 사자들의 식욕과 능력은, 곧 이어 "왕이 명령을 내려 참소한 사람들을. .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림으로써 입증되었다(6:24).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전 10:8)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그 이 후 페르샤 시대에 또 다시 하나님의 충성된 종 모르드개를 죽이려 하만이 스스로 빠진 함정이기도 했다 (에 7:9, 10). 사자굴의 하룻 밤을 보내며 다니엘이 드린 기도는, 아마도 일찌기 다윗이 드렸던 아래와 같은 기도였을 것이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 .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시 57:4, 7).


기도드리는 다니엘을 사자들도 삼킬 수 없었고, 오히려 "사자의 입을 막"았듯이(히11:13), 동일한 권면을 우리도 아래와 같이 받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 9).


2)드높여진 하나님
다니엘의 극적인 구원은 왕을 비롯한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자초지종 목도한 다리우스왕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마침내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나온 뒤 느브갓네살이 바벨론 전국에 선포했던 조서(3:28, 29)와, 느브갓네살 자신이 정신병에서 회복된 후 반포했던 또 다른 신앙 간증의 조서에 이어(4장), 세번째로 메대왕 다리우스에 의한 참 하나님을 알리는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었다

(6:24-27). 다니엘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세계의 만민들이 영원히 사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구원의 기별을 듣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