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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멸망의 전야(前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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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0 2,822 2001-08-31 10:25
2.바벨론 멸망의 전야(前夜)
다니엘서 5장의 사건은 정확하게는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밖에 일어난 사건으로, 앞 서 4장의 사건을 느브갓네살이 죽은 기원전 562년 10월 초의 사건으로 기준한다면 두 장 사이의 시대적 간격은 23년이 되는 셈이다.

5장의 사건은 금 머리와(2장) 독수리의 날개를 단 사자로(7장) 표상된 바벨론의 마지막 밤으로, 금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은 팔 가슴이 들어서는 순간이었으며(2장), 사자가 넘어가고, 곰이 올라오는(7장) 세계사의 엄숙한 찰나였다. 바로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다니엘은 5장에서 바벨론의 최후에 관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열거하고 있다.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5:1-4)
각종 우상신들을 찬양했다(5:4,23)
벨사살이 성 안에 있었다(5:1,2 6-9)
벨사살이 그 밤에 죽임을 당했다(5:30)
메대와 폐르샤에게 망했다(5:28)
메대의 다리오가 왕국을 차지했다(5:31)

실제로 이러한 사실들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얼마나 실제적이고 역사적인가


가.마지막 잔치
성경은 바벨론의 멸망이 큰 잔치가 베풀어지던 밤에 있었다고 말한다(5:1-4, 28, 29). 이 사실에 대하여 희랍의 역사가 크세노폰(Xenophon)도 바벨론이 함락되던 당시 [온 바벨론에 어떤 잔치가 있었는데 이 잔치가 있을 동안 바벨론이 온통 마셨고 밤새도록 흥청거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동시에 고레스는 이렇게 환락의 잔치가 바벨론성 안에서 베풀어져 밤새 흥청거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밤을 도와 공격했다고 썼다. 이렇게 마지막 밤이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개략하면 다음과 같다.

나보니더스 통치 초기에 동방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는 메대의 봉신왕(封臣王)인 안산(Anshan·페르샤)왕 고레스였다. 그는 마침내 기원전 553년 종주국 (宗主國)인 메대를 반역하고 550년에는 수도 엑바타나(Ecbatana)를 점령했다.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 나보니더스는 고레스를 대항하기 위해 이집트와 사데(Sardis)의 리디아(Lydia)와 연맹을 맺고 대항했다.
그러나 기원전 547년 고레스에 의해 사데에서 크뢰수스(Croesus)가 패하자, 바빌로니아는 직접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539년, 충분한 전쟁 준비를 끝낸 고레스는 바벨론 영토로 진격하여 바벨론의 풍요한 동부 방어성인 구티움(Gutium)을 쉽사리 점령했다. 이에 놀란 나보니더스는 바벨론의 여러 신들의 힘을 빌어 자신을 지키고, 고레스가 들어와서 이러한 신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침략이 예상되는 성들로부터 그 성의 신들의 조상(彫像)들을, 539년 봄과 여름에 걸쳐 모두 바벨론 본성으로 모아들였다. 그의 이러한 처사는 신을 도적질해 가는 것으로 여겨져, 성들의 지방민들과 지방 제사장들을 분노하게 했으며 마르독 신만을 최고의 신으로 받들던 바벨론성의 제사장들을 시기나게 했다.
이에 벨사살은 고레스가 티그리스 강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티그리스 강변의 요충인 오피스(Opis)에 군대를 이끌고 나갔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오피스를 점령한 페르샤 군사는 아무 저항 없이 539년 10월 11일 유프라테스 강변의 요충 도시 시파르(Sippar)에 진입했다.
위급해진 나보니더스는 그 전 날인 10월 10일 남쪽으로 도망쳐, 보르시파(Borsippa)성에 들어가 성문을 닫았으며, 벨사살은 시파르에서 남쪽으로 35마일 아래 쪽인, 바벨론 본성으로 들어가 방어에 임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벨사살은 그 견고한 네 겹의 성벽과 위기에는 주변의 지방들을 물로 잠기게 하여 침입자들이 성에 이르지 조차 못하도록 설계된 운하망으로 보호된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을 철석 같이 믿고, 오히려 자만심에 넘쳐 있었다. 다음은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터스와 크세노폰의 기록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성벽들 밖에 진을 치고서 그(고레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도시로부터 멀지 않은 장소에서 한 바탕의 싸움이 벌어졌으나 바벨론 사람들은 페르샤 왕에게 패하여 자기들의 방어시설을 철수시켰다. 그들은 바벨론 성안에 들어 박혀서 그의 포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는 그들이 고레스가 한 나라씩 한 나라씩 정복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그 정복을 결코 멈추지 않고, 마침내는 자신들의 차례가 오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 공격에 대비한 준비로 여러 해를 위한 양식을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성벽들 안에 들어 앉은 그들은 이 봉쇄를 비웃었는데, 이는 그들이 약 20년 동안의 필수품들을 스스로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 . .고레스는 바벨론 성안에서 어떤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온 바벨론 사람들이 밤새껏 마시고 흥청거린다는 사실을 들었다.]


[오래지 아니하여 불운이 닥쳐왔다. 바벨론은 메대와 페르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메대 사람 다리오의 조카인 고레스에 의하여 포위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 견고한 성벽들과 구리문들을 가진 난공불락(難功不落)인 것처럼 보이는 성채 안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의해 보호되고 넉넉하게 식량을 비축해 둔 주색에 빠진 군주는 안전하게 느끼고, 환락과 주연으로 시간을 보냈다](선지자와 왕, 500)


공포를 달래는 잔치
이 위태로운 순간에, 왜 이렇게 엄청난 술 잔치가 베풀어졌을까. 주연이 베풀어진 때는 539년 10월 13일 밤이 되는데 이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요새인 시파르(Sippar)가 함락된 10월 11일 다음 날인 것으로, 벨사살의 부와 나보니더스는 전투에서 패하여 바벨론 남쪽에 있는 보르시파(Borsippa)에 피신하고 있는 터였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나라와 자신과 아들을 위해 앞서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패하여 보르시파 성에 갇힌 채 불안에 떨고 있는 때,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아들은 평안하고 안전한 바벨론 성안에 들어앉아 술과 여자로 뒤범벅이된 술잔치를 벌이다니!혈연을 같이 한 아버지가 적군으로 둘러 싸인 성 밖에 있고 생사조차도 분명치 않은 때, 부량자요, 불효인 벨사살이 취한 이 경망한 태도야말로 오늘날 얼마나 많은 현대의 벨사살인 불량한 자식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는 정신인가.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나가 자식들을 위해 혼신(渾身)의 힘이 진하고 몸의 피가 마르도록 수고하는 부모님들의 노고(勞苦)를 아랑곳하지 않는 자식들이야 말로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이 땅에 이르게 하는 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한 목석(木石)같은 사람들인 것이다(딤후 3:1-3).

왜 이러한 잔치를 이런 때에 베풀었을까. 아마도 긴박한 상황 때문에 점증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진정시키고 연전연패(連戰連敗)로 인하여 떨어질대로 떨어진 사기(士氣)를 진작(振作)시키기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 무엇보다도 제사장들을 비롯한 지도 계급이, 이미 이전부터 나보니더스-벨사살 체제에 대해 가져온 노골적인 불만과 불평을 달래야 했을 것이었다. 본성 바벨론을 버려두고, 외유(外遊) 만을 즐기며 그토록 중요한 바벨론의 신년 축제도 걸르기가 일쑤고, 주신인 마르둑을 경시하는 듯한 나보니더스의 태도는 특히 그랬다. 겨우 페르샤의 공격이 있기 직전에 돌아와 제대로 싸움도 못하고 도망친 부왕과, 바벨론이 적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기까지 변변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벨사살에 대하여, 백성과 지도 계급 특히 제사장들이 가진 불신감은 대단하였음에 틀림없다.

이리하여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서 불신감을 해소하고 불평과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술과 여자와 우상숭배 의식까지 곁들인 환락의 잔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메대와 페르샤의 대군에 의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어 불안하고 동요하는 백성들에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듯, 태연하게 잔치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려는 제스쳐일 수도 있다. 고조되는 불안을 잊고 진정시키기 위해, 여럿이 한 대 어울려 술을 마셔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사람이 바로 벨사살이었다.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고…… 네 힘을 여자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잠 31:2-7).


나.술과 여자와 우상의 제전(祭典)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 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명하여 그 부친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 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5:1-4).



환락의 밤- 술과 여자
1868년 마취(Daniel March) 박사가 슨 감명깊은 책[성경의 밤 장면들] (Night Scenes in the Bible)에는 [벨사살의 밤 잔치]가 쓰여 있다. 끝가지 버티던 인간의 교만이 마침내 꺾이고, 인간의 황금 꿈이 진흙 속으로 빠져 버리는 순간이다. 고대의 대제국들이 큰 잔치를 벌이는 것은 상례였다. 고대 희랍의 역사가 테시아스(Ctesias)의 기록에 의하면 페르샤의 왕은 매일 15,000명을 그의 식탁에서 먹였고, 알렉산더 대왕의 국제적인 결혼 축하연에는 10,000의 하객(賀客)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한 때 앗시리아의 수도였던 님루드(Nimrud)의 고대 궁전 폐허에서 발굴된 비명에 의하면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가 궁전 낙성식을 할 때, 열흘 간 69,574명을 먹이고 수용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페르샤왕 아하수에로가 180일 동안 엄청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사가 있다(더1:3-9). 벨사살의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은 귀인 일 천명이었다. 이곳의 귀인(貴人)은 "라브르반"(rabreban)으로 어떤 직책보다는 그들이 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분류되는 지도급의 중요 인물(V.I.P.)인 것이다.

당대의 습관대로 먼저 식사가 끝나고, 술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특히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5:2) 라고 강조한 것은 고대 동방의 궁중잔치 관습에 따라 왕이 일반과 분리된 테이블에 앉아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마시도록 되어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이교 국가라해도 여자들이 이런 공공연한 궁중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격식(格式)이 아니었다. 게다가 왕의 부인으로 분류되는 후궁(後宮)들 외에도 처첩(妻妾)들까지 불러들인 것은 예외적인 처사였기 때문에 그들의 참석이 거듭거듭 지적되고 있다(5:3, 23).

과거의 모든 나라와 사회와 개인의 불행과 종말을 가져 온 징후(徵候)인 술과 여자가 예외 없이 바벨론의 마지막 밤을 노크한 것이다. 이미 동방을 거침없이 제패한 페르샤의 고레스도 속수무책이었던 난공불락의 바벨론 성이 바야흐로 술에 의하여 함락되고 있었다. 벨사살은 그 저녁에 마신 술에서 깨어나기 전 그의 나라와 함께 자신의 최후를 맞은 것이다. 꼭 같은 일이 216년 뒤에 같은 장소,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30세가 되기 전에 근동의 세계를 제패한 승승장구의 정복 왕 알렉산더가 그의 생애의 절정에 바로 이 바벨론 성에서 자신의 무패(無敗)의 전적(戰績)을 찬양(讚揚)하며 승리를 만끽하면서 마구 마시며 흥청거리더니 주연(酒宴)의 날들 후에 습지열(濕地熱)에 걸려 쓰러지고 만 것이다. 난공불락의 인간 알렉산더도 술에 의하여 정복되고 말았다.

워터루의 (Waterloo)명장 웰링톤장군이 나폴레옹의 군대와 대전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다가 진로에 포도주 단지(團地)가 있다는 정보에 접하자 선발대를 보내 이를 완전히 훼파한 후에야 그의 군대를 통과하게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웰링톤 장군과 워터루에서의 마지막 결전을 앞둔 전 날 밤, 나폴레옹의 네이(Ney)장군은 늦게까지 포도주를 기울이다가, 다음 날 무력하게 망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프랑스 범죄자의 80퍼센트가 음주에 기인되어 범죄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다.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결혼 피로연 자리에서 미국의 한 신부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신랑과 그의 새 가정을 위해 포도주로 축배(祝杯)를 들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부는 이를 거절했지만 아버지가 더욱 야단스럽게 권하자, 마침내 이 어린 신부는 포도주 잔을 높이 쳐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포도주의 색깔과 거품은 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이혼한 남편과 마음이 상한 아내와 근심하는 어머니와 그늘지고 슬픔에 잠긴 우리 가정을 봅니다.]


참으로 술은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깨뜨리고 사회를 금 가게 하며 나라를 파멸케 하는 것이다. [마셔 넘기는 술잔 속에 아내 눈물 고여 있고, 씹어 삼키는 안주 속에 자식 원한 섞여 있다]는 금주 표어가 음주하는 가장(家長)이 있는 집집마다 게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 .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 .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怪異)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26-35).

우상의 제전과 신성모독
술과 여자로 뒤범벅이 된 밤 잔치는 마구 마신 술 기운이 돌면서 의식이 몽롱해진 벨사살이 [예루살렘 전(殿)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 오]라고 명함으로써 신성 모독과 우상의 제전(祭典)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주귀(酒鬼·alcohol demon)의 지배를 받게 되면, 거짓으로 담대해지고 자제력이 약화되고 흐려지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이 벨사살에게서 연출되었는데 그의 부절제(intemperance)는 부적절(impropriety)한 행동을 하게 했으며 그 결과로 불경건 (impiety)한 행동을 서슴치 않아 하나님을 모독하여 우상숭배(idolatry)를 자행하게 했다.

벨사살의 이러한 어리석음의 극치는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명(器皿)으로 감히 술을 마시는 만행(蠻行)으로 나타났다. 일반 다른 종교의 성물(聖物)을 모독하는 것이 당대 동방의 습관이 아니었거든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의 거룩한 기명을 가장 불경한 왕이 가장 거룩지 못한 자리에서 가장 저속한 목적을 위해 손을 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곳의 성전 기명들은 세 차례 즉 기원전 605년 (단 1:1, 2), 597년(왕하 24:12, 13), 그리고 586년 예루살렘이 마지막 함락될 때 옮겨 온 것들이었다(왕하 25:13-17). 에스라의 기록에 의하면, 그 숫자는 5400개였다(라 1:7, 8, 11).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은 이미 예언된 바로서(렘 27:7, 51:39, 40, 57), 벨사살 당시까지 거의 70년 가까이 마르둑의 복합 신전 어느 부속 건물, 아마도 왕궁 박물관에 유다와 그들의 신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는 증거물로 전시되었던 것이었다.

취기가 돌면서 대담해진 왕은 그의 조부 느브갓네살은 이것들을 가져 오는데 그쳤지만 자신은 감히 이것들로 술을 마실만큼 유대인의 하나님을 경멸할 수 있으며 담력이 있음을 과시하려 한 소치였다. 그러한 증거로 그는 하나님 만을 섬기는데 쓰기 위해 만든 기명들에 술을 부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나서, 이번에는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을 비롯하여 나보니더스에 의해 바벨론성에 총집결된 각 지방의 잡다한 신들, 곧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불경건한 태도였으며 극도에 이른 신성모독 행위였다. 이러한 고대 바벨론의 참람된 죄악이 또 다시 현대 바벨론을 대표하는 큰 음녀(淫女)의 소행에서 다시 나타난다.


[. . .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 . . 내가 보니. . .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보석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1-4).

하나님 성전의 금잔으로 우상을 경배하는 자리에서 포도주를 부어 마시는 이 행위는 고의로 거룩한 것(聖)과 속된 것(俗)의 구분을 짓밟아 없애는 최악의 신성모독이다. 그것이 고대 바벨론의 최대의 죄악이요, 현대 바벨론을 파멸시킬 죄악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사 57:15, 43:15)에 관련되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인 성소(聖所)와(출 29:43),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이었다(출 20:9). 그러므로 성소봉사에 쓰여지는 모든 물건은 거룩했으며(聖物)(출 29:37, 학 2:12).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사람(聖民)이었다(사 52:11, 고후 6:17).이러한 근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인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하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고전 3:16, 17, 고후 6:16). 음행과 우상숭배와 음주 흡연을 비롯한 모든 부절제가 하나님의 전인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에 대하여 같은 의미가 부여됨은 당연하다. 안식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의 개념을 짓밟는 것은 곧 바벨론의 죄악인 것이다.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不淨)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겔 22:26).

그런데 이러한 현대 바벨론의 죄악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성되는가 벨사살의 잔치와 운명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그 두 뿔 가진 짐승이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계 13:16, 17). 그런데 세째 천사의 기별에는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세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라고 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하권 222).


고대 바벨론의 경우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타락한 교회가 국가 특히 미국의 힘을 빌어 고대의 모든 다신교 종교의 상징인 일요일을 드높이기 위해 안식일을 무시 하도록 법적규제를 가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상징인 안식일을 짓밟게 하는 행위에서 현대 바벨론이 벌여 놓은 금잔에 부은 음행의 포도주 잔치를 보게 된다(계 17:4,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