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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 느브갓네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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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0 4,066 2001-08-31 10:36
2. 큰 나무 느브갓네살의 꿈

가.두려움과 번민으로 떠는 거목(巨木)
[나 느브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 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인하여 번민하였노라] (4:4, 5).

1.[편히 있으며 평강할 때]
느브갓네살은 위대한 정복자(conqueror)요, 전제 군주(autocrat)요, 건축자(builder)였다. 43년 간의 재위 기간(605-562 BC)의 대부분을 이국의 전쟁터에서 보냈으며 본국에 돌아와서는 건축현장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그는 마침내 "내 집에 편히 있으며"(at rest in mine house), "편히 있으며"란 말은 "근심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음을 뜻하는 히브리어(Sheleh)에서 온 말이다.

"내 궁에서 평강할 때"(flourishing in my place)를 "평강할 때"란 말은 "한창인 푸르름"을 뜻하는 말로 시 52:8의 번창하는 나무를 뜻하는 히브리어 ra'enan이다. Wood, 103.

맞이한 것이다. 그는 왕이 되던 해 숙적 앗시리아를 영원히 끝장냈으며 그의 재위 19년에 말썽 많던 유다에 종지부를 찍었고 아라비아도 정복했으며 상업 왕국이며 바다의 왕자인 두로를 13년 간의 포위 끝에 기원전 573년 기어이 함락시키고 말았다(겔 29:18-22).. 두로가 570 BC 까지도 바벨론의 지배를 받았음을 보여 주는 상업문서가 발견되었다.

아마시스(Amasis)가 다스리던 이집트도 정복했음이 느브갓네살 재위 37년 즉 기원전 568년으로 연대가 적힌 점토문서에서 발견되어 이제 그는 참으로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는 평화롭고 안전한 만년(晩年)을 맞게 되었다.. Thiele, 43.

게다가 그는 대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만들어 놓았다. 현대의 발굴을 통하여 밝혀진 바에 의하면(지도 참조), 바벨론의 내성가(內城街; Inner City)는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 싸였는데 안쪽 성은 그 두께가 13 피트(3.6 미터)였고 바깥 성은 22 피트(6.7미터)였다. 그리고 성 외곽으로는 해자(垓字)를 파서 또 하나의 방어가 되게 했다. 유프라데스강 동쪽 편에는 이 내성가를 두른 또 하나의 외성각(Eastern New Quarter)을 쌓았는데 그것은 이중 성벽으로 안쪽 성은 24 피트(7.3 미터), 바깥 성은 7.9 미터나 되었다.. Horn, 40.

이렇게 견고한 네 다섯 겹의 성벽으로 둘러 싸인 궁전에서 세계 최강의 무적(無敵)의 대군으로 보호받는 그에게 무슨 두려움이나 불안이 있겠는가(바벨론성 지도 참조).

게다가 고대 세계의 칠대 경이(The Seven Wonders of the World) 가운데 하나인 가공원(架公園)을 비롯하여 53개의 신전, 955개의 성소(聖所), 384개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와 그의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 바벨론은 명실공히 "무역과 산업과 상업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Werner Keller, The Bible as a History, 297.

이제야 말로 그는 아무 아쉬울 것 없이 "내 궁에서 평강할 때"였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밭의 소출이 풍성했던 어리석은 부자처럼(눅 12:16-21) 느브갓네살은 모든 것을 자신의 계획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자만심에 빠졌다.

2.한 꿈을 꾸고 두려워하였으며
그런데 그러한 그가 지금 무서워하고 급기야는 번민하게 된 것이다(3:5). 무엇이 그를 무섭게 했는가. 그가 꾼 꿈이었다.. "I saw a dream which made me afraid, and the thoughts upon my bed and the visions of my head troubled me," (KJV).

그를 무섭게 한 것은 전쟁도, 재난도, 물도, 불도 아니었다. 이런 것은 막을 수가 있고 피할 수도 있지만 어느 누가 꿈을 막을 성벽을 쌓을 수 있는가. 오늘 날의 발달된 과학을 가지고도 인간은 아직 꿈을 막아내는 방편을 찾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가장 안전하다고 여길 때 꿈을 통하여 쉽사리 이 안전을 무너뜨리실 수가 있으시며, 다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어떠한 인간이라도 꿈을 통하여 신속히 그에게 접근하실 수가 있으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지키시기 위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경고하심으로써 신속히 위기를 타개하셨으며(창 20:1-7), 바로에게 꿈을 주심으로써 옥중의 요셉이 구출되어 총리의 자리에 앉게 하셨다(창 41장).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막강한 미디안 군대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꿈에 의해 혼비백산(魂飛魄散)했으며(신 7:13-15), 예수님을 재판하던 빌라도는 그의 아내가 꾼 꿈으로 경고를 받았다.

[그토록 야심이 많고 교만한 성공적인 군주가 참된 위대함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겸손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유혹을 받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 . 건설자로서의 그의 열정과 바벨론을 세계의 경이(驚異) 가운데 하나로 만든 그의 주목할 만한 성공을 그의 자만심을 만족시켜 놓아서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시키시는데 사용하실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록을 망쳐 버릴 중대한 위험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가운데 그의 위험과 그의 파멸을 초래하기 위해 놓여진 함정에 대해 경고하시기 위해 왕에게 또 다른 꿈을 주셨다] (선지자와 왕, 492).

나. 느브갓네살의 나무 꿈
꿈을 꾸고 두려워하며 번민하던 왕은 자신이 꾼 꿈이지만 스스로 해답을 찾아낼 수 없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번민만 깊어 가자 늘 하던대로 또 다시 바벨론의 지성들(知性; wise men) 곧 박수(magicians)와 술객(astrologers) 와 갈대아 술사(the Chaldeans)와 점장이(soothsayers)들을 소집하여 자신의 문제의 해석과 해결을 의뢰했다(4:6, 7).

1.무능한 인간의 지성과 종교
전번의 2장의 사건과는 달리 꿈의 상세한 내용까지 진술했어도 바벨론의 석학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이번에도 또 다시 그들의 무능과 무지와 무기력을 드러냈다. 꿈의 내용은 누가 들어 보아도 불길한 것이므로 이 때문에 왕도 번민하고 있었다. 그들도 어렴풋이는 짐작했을지라도 감히 그들의 견해를 발설하기를 꺼렸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저들은 알게 하지 아니하였다"(they did not make known) 함과 동시에 "저들은 알게 하지 못하였다"(they could not make known).. SDABC. vol. 4, 788, 789.

또 다시 바벨론의 학문과 종교의 한계점이 드러났으며,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4:8) 다니엘이 불리워 왔다.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와 종교와 학문이 무가치하고 무능함을 깨달은 후에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돌아서는 것이다.

2.거대한 나무 느브갓네살
거대한 나무와도 같은 대군주(大君主) 느브갓네살은 두려움과 초조가 역력한 표정으로 다니엘에게 자신의 꿈을 진술했다(4:10-18). 무성하고 커다란 어떤 나무 이야기였다. 성경에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감람나무, 겨자나무, 가시나무, 백향목, 떨기나무, 사과나무, 호도나무, 야자나무, 아카시아나무,버드나무, 상수리나무, 포도나무 등 다양하다.. SDABC. vol. 8, 359-361.

이 나무들은 자주 자주 그 특성에 따라 영적인 실물교훈으로 쓰여졌으며, 개인과 나라를 표상한 경우가 많다. 감람나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롬 11:16-25, 호 14:6, 시 52:8, 렘 11:16.

에스겔은(겔31:3-18) 앗시리아를 힘센 백향목이라고 비유했다. 예수께서는 온 세상에 확대될 그분의 나라를 겨자 나무에 비유하셨다. 느브갓네살은 특별히 백향목을 좋아하여 그것으로 마르둑 신전과 자신의 궁을 짓는데 사용했으며 그 까닭으로 백향목의 주산지인 레바논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J. 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307.

그런데 이제 느브갓네살 자신이 땅의 중앙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로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풍성하여 그 나무 가지와 그늘 아래 새들과 짐승이 서식(棲息)하는 참으로 기대되고 쓸만한 나무로 비유되었다(4:10-12). 그러나 이 나무가 하늘을 찌를듯이 높게 자라고 땅 끝에서도 보일만큼 울창해진 때 한 감시자(순찰자; Watcher)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거목을 그루터기만 남기고 모두 자를 것을 명하고 그 그루터기도 쇠와 놋줄로 단단히 묶어서 일곱 때 즉 7년 동안 방치해 두라는 지시가 주어진다. 그동안 이 나무로 표상된 그 사람은, 사람 노릇을 못하고 짐승처럼 되어, 짐승 노릇을 하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줄을 깨달은 후에야 다시 사람 노릇을 하게 되리라는 내용이었다(4:13-17). 꿈 이야기를 듣고 난 다니엘은 꿈의 주인인 왕보다 더 깊은 번민과 두려움으로 충격을 받아 "얼마 동안 놀라 어리벙벙"하자 오히려 왕의 격려를 받기에 이른다(4:19). 다니엘의 이러한 반응은 그 다음의 말과 함께 그가 이방인이요 이교도 왕인 느브갓네살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의 번영을 기원했음을 드러낸다. 동족을 사로 잡고 조국을 유린한 느브갓네살을 미워하는 대신 그토록 진정한 개인적 충성심을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이해한데서 기인한 차원 높은 역사철학 때문인 것이다.

3.위대한 사자(使者) 다니엘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여 마음이 번민"(4:19)하던 다니엘은 언제까지나 그런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그 불길한 내용 때문에 자칫하면 왕의 분노를 사서 분풀이를 당할지도 모르는 그 난처한 자리에서 다니엘이 보인 진심은 왕의 충분한 이해와 관용을 획득하기에 넉넉했다. 다니엘은 참으로 까다롭고 어려움이 많아 살기가 쉽지 아니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터득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마 10:16)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니엘은 왕의 손에 잡혀온 포로나 왕의 손에 죽고 사는 것이 달린 신하로서가 아니라 하늘의 기별을 전달해야 하는 하나님의 사자(messenger)로 서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선언 즉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4:22)는 운명의 선고를 해야 했다.. 흠정역(KJV)에는 "It is thou, O king"으로 보다 강력한 표현이다. "그것이 곧 당신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지자나 설교자가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일과 말은 곧 다른 사람 특히 신분이 높거나 자기 보다 유력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죄악을 지적해 주는 일이요, "당신이 죄인이요"라는 말이다. 가장 하기 싫은 말은"내가 잘못했다"(I am wrong)는 죄의 고백이며,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I love you)라는 사랑의 고백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의 죄 특히 왕으로, 그가 잘못했고 범죄했음을 인정하게 하는 일은 얼마나 더욱 어려운 일인가. 선지자 나단은 자신의 범죄를 조금도 내색하지 않는 다윗왕의 면전에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고 선언했다. 스데반은 증오와 시기로 살기등등(殺氣騰騰)한 산헤드린 앞에서 "너희가 그 사람이라"(행 7:51)고 선언함으로써 목숨을 잃었다. 다니엘은 그 꿈의 진상 곧 두려운 심판의 기별을 낱낱이 전한 후에 요청받지 아니한 다른 일까지 부연했다. 그것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 심판을 면하라는 열렬한 호소였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단 4:27).

다니엘은 지금 그리스도 복음의 진수, 곧 구속의 경륜을 왕 앞에서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죄를 속하고"는 "죄를 끊어버리고", 혹은 "죄 짓기를 중지하고"(break off thy sins)를 뜻한다.. 히브리어 paraq에 해당하는 말로 출 32:2, 창 27:40, 출 32:3, 24, 겔 19:12 등에 그 용례가 있다.

다니엘은 지금 왕에게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고 호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저지르고 있는 "죄악"(iniquities)을 멈추고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다니엘은 죄를 막연하게 취급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별히 "억압 당하고 고통 당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강조하고 있다.. Wood, 117.

무엇보다도 대 토목 공사에서, 뜨거운 폭양(暴陽) 아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혹사(酷使)당하면서 수 없이 죽어 나가는 비참한 포로들과 역군들의 모습을 다니엘은 염두에 두고 있다. 생명을 경시하고 불의를 자행하는 일은 당장 지양되어야 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제하고 매사를 공의롭게 다루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총독 벨릭스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하여 설교했고(행 24:25),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에게 회심을 촉구했다(행 26:27 -29).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도 어떻게 기별을 소개하고 호소하여 회심시켜야 하는지를 보이고 있다. 즉,

·기별의 내용과 배경 설명 - "이는 곧 . . ." (행 2:16-22)·기별의 주체이신 하나님(그리스도)과 대질(對質)시킴 -"그가 . . . " (행 2:23-25)·듣는 이 각자에게 직접 적용시킴...... "너희가......"(행 36:38).. Strauss, 131.

다니엘은 이 엄숙한 심판의 기별을 대왕에게 전함에 있어 처음에는 친구로서의 염려와 이해를, 다음에는 선지자로서의 곧고 분명한 기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복음전도자로서의 열렬한 호소를 발함으로써 하나님의 완전한 사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이 곧 오늘날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의 귀감이 아닌가(딤후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