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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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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0 3,050 2001-08-31 10:42
4. 교훈과 의의

가. 퇴락(頹落)해 가는 인간 세계
1. 세상의 역사를 표상한 다니엘서 2장의 쇠붙이 신상이 의미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질적(質的)으로 저하되고 그 가치가 일로 하락되어가는 인류 역사의 진상이다. 금이 은으로, 은이 구리로, 구리가 쇠로 쇠가 진흙으로, 그 존재 가치가 저열해지는 "만 못한" 세상을 보게 된다(2:39).

존재 양상에 관한한 모든 것이 퇴락해 가고 있다. 쇠퇴 일로의 자연계, 저열해지는 인간 도덕, 저속해지는 인류 문명, 쇠퇴해가는 사회와 비속(卑俗)해지는 음악과 문학 등 예술이며 모든 것이 하락(下落)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이 여러 금속들의 원자량(原子量)이 금(197)→ 은(107) → 구리(65) → 철(55)로 감소되고 있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자연계는 물론 인간의 모든 것은 쇠퇴와 타락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철칙으로 알려진 열역학의 제2법칙인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이다.


2. 이러한 질적 저하 외에도 약화되는 응집력(凝集力)이다.

머리에서 발가락으로 내려오며 점점 약화되는 통일과 화합은 마침내 절대로 합할 수 없는 철과 진흙의 부조화(不調和)에 이르고 만다. 더욱 심해지는 국제 분규, 어려워지는 사회, 약화되는 가족제도, 깨뜨려지는 결혼관계, 불신 사조로 멀어져가는 인간관계 등 어느 것 하나 견고해지는 것이 없다. 이러한 응집력의 상실은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2:35).


3.어떠한 물체이든지 무게의 중심이 아래에 있을 때 안정성(安定性)이 높아진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를 표상한 본장의 신상은 어떠한가. 비중(比重)에 있어서 금(19. 3) → 은 (10. 5) → 구리(8. 9) → 철(7. 8) 그리고 진흙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로부터 무거운 것이 역순(逆順)으로 놓여 있어 아래로 내려 올수록 불안정해진다. 이러한 조각품이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성질과 구조상으로 인간의 역사는 필경 붕괴될 운명인 것이다. 돌이 신상의 발을 칠 때 그렇게 단번에 풍진(風塵)이 된 것도 이러한 불안정 때문인 것이다.

나.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
아리옥의 인도로 왕 앞에 선 다니엘은 왕의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서슴치 않고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영문: There is a God in heaven)고 대답했다 (2:27, 28). 이것은 다니엘서 뿐만 아나라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위대한 기별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사람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오늘날 세상이 처해 있는 이 절망적인 상황은 인간이 이 교과를 배우지 못한 데 기인하고 있다. 하나님보다 더 큰(위대한) 것은 없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약점이요, 수치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떠했는가.

「다니엘은 그의 지혜의 근원을 시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신실하게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 왕궁에서의 다니엘의 영향력을 손상시켰는가. 결코 그렇치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능력의 비결이었으며 그것이 그로 하여금 바벨론 통치자의 눈에 은총을 입게 만든 것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에게 하늘이 보낸 교훈과 경고와 책망의 기별을 알렸으며 그는 거절당하지 않았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들로 다니엘의 확고하고 대담한 증언을 읽게 하고 그의 모본을 따르게 하라. 하나님께 마땅한 충성과 명예를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라도 세상의 용납과 인정을 얻으려고 추구하는 것보다 사람이 저지르는 더 큰 어리석음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협력하실 수 없는 곳에 우리 자신을 둘 때에 우리는 우리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육체를 회복시키고, 마음을 활기 있게 하며 영혼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뿐이다」(7T, 151).



다. 바벨론에 보내신 첫번째 기별
다니엘을 비롯한 그 분의 백성들을 바벨론에 보내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 문화, 종교의 대제국인 바벨론에 참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하늘에서 시작된 선악의 대쟁투의 촛점은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하는 예배(worship)에 관한 것이었다. 루스벨(사단)은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높여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훼방하고 창조주 하나님께만 합당한 예배를 자신에게로 귀속(歸屬)시키려는 것이 그의 본래의 의도였다(사 14:12-14, 겔 28:13 -15). 예배의 횡령(橫領)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의도는 인간의 범죄로 이 땅 위에서 그 기반을 찾아 그동안 우상숭배와 다신(多神) 예배 및 인간의 자기 숭배를 통하여 실현되어 왔다.

광야에서 예수님과 담판(談判)하던 때 사단은 세상의 안일과 부귀영화를 미끼로 감히 자신에게 경배할 것을 강요하던 노골적인 심사(心思)에서 그의 진의를 보게 된다(마 4:8, 9).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예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신당부되었던 교훈이요 명령인(신 6:4, 5, 13, 삼상 7:3)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는 것이었다. 이 기별이 바로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인 첫째 천사의 기별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는 내용이다.

다니엘 2장의 사건을 통하여 바벨론에 선포된 기별은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시요(2:11, 28, 29), 그분께서 세상과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2:21, 22). 세계 치리자인 느브갓네살이 이 사실을 깨달아야 했고 그 백성이 이 기별을 들어야 했다.


「인류 역사의 기록을 보면 모든 민족들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이 마치 사람의 의지나 용기로 좌우되는 듯이 보인다. 여러가지 사건들의 생성(生成)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해 결정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휘장이 걷혀져서 거기서 우리는 무대의 배후를 보면 인간의 관심과 능력과 감정의 모든 작용과 반작용을 통하여 온전히 자비하신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묵묵히 그리고 인내성 있게 하나님 자신의 뜻의 계획들을 실현시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선지자와 왕, 477).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각본(脚本)을 쓰셨고 인상 깊은 시청각 자료인 쇠붙이 신상을 내세워 다니엘이 연사가 된 바벨론에서의 하나님의 첫번째 전도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첫번째 결신자(決信者)는 느브갓네살이었으며 바로 그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첫째 천사의 기별이 이렇게 확인되었다.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단 2:47).


방금 전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그 백성을 포로해 감으로써 승리를 장담했던 사단은 이제 그의 지상 대리자인 바벨론 왕이 하나님의 연소한 종인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께 굴복하는 참패를 겪게 된다(2:46). 그분의 백성의 불순종과 불성실 때문에 종종 전투(battle)에서는 지실지라도 전쟁(war)에서는 끝내 이기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확신한다.


라. 참되고 확실한 예언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금과 은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일을 왕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 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2:45).


아직도 소년의 앳된 티를 다 벗지 못한 다니엘은 그 신비한 꿈의 진상과 해석을 대왕 앞에서 또박또박 거침 없이 설명한 후에 마지막 다짐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이 꿈이 참되고(certain) 이 해석이 확실하다(sure)"는 단서였다. 이제 우리는 그 꿈이 공개되고 그 해석이 공포된지 2500년이 지난 시대에 살고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역사가 여부가 없이 그 꿈이 참되고 그 해석이 확실함을 입증했음을 본다.

「1914년 2월 미국의 로스 앤젤러스에서 일단의 경건한 성경 학자들이 예언 대회를 개최탖다. 그들은 나라들이 일어나 서로 대적하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 많은 사람이 죽으리라는 성경의 예언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마 24:7, 24:6). {91;그리스도인 옹호자{92;란 잡지의 편집인은 이 선언을 듣고 참석자들과 그들의 기별을 조롱하면서 그 모임을 "예언 대회"(Prophetic Conference)라고 하는 대신 "애상(哀傷) 대회"(Pathetic Conference)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비꼬아 말했다. 이 때가 1914년 2월로 그들의 탁월하다는 신학에 의하면 이제 곧 이 자유로운 세계에는 복천년(福千年)이 초래된다고 하던 때였다. 6개월이 못되어 오스트리아의 대공(大公)이 세르비아에서 암살당하고 전 세계가 격노한 전쟁 속에 삼키웠으며 피의 홍수 속에 빠지고 말았다. 때에 미국 대통령 윌슨은 미국 군대들에게 "모든 전쟁을 끝장내고 세계를 민주주의로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싸움을 위해 바다를 건너가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후 독일의 히틀러, 일본의 동조, 소련의 스탈린을 생각할 때, 이 말이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였는가.」


마. 밝아오는 미래
이처럼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한"(벧후 1:19) 소망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세상 역사의 종말이요 본장의 클라이막스인 그리스도의 재림 곧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하신(딛 2:13) 재림의 소망인 것이다. 이제 잠시 후 열 발가락의 열국시대의 막바지에 사는 인류는 "그 때에 사람들이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눅 21:27).

그것은 죽음과 공포의 원자시대를 알리던 버섯구름이 아니라 슬픔과 재난과 깨어진 꿈으로 얼룩진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천연석(天然石)의 통치가 시작되는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고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고 계신 것이다. 죄와 슬픔을, 죽음과 고통을, 지긋지긋한 전쟁을 영원히 끝장내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오고 계신 것이다. 평화의 왕,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망을 희망으로, 눈물을 환희로 바꾸시려고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는 가운데서(계 1:7), 환하고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광과 환희의 시간에 이 인류 역사 최후의 최대 사건을 위하여 아무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세상의 욕심에 휩쓸려 죄와 인연을 끊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이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계 6:16, 17)는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비극 중의 비극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종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그것은 각 사람의 선택에 따라 최대의 희망일 수도 있고 최후의 비극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 각자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명명백백(明明白白)하지 않은가.


확실히 오시네

- 오스왈드 J. 스미스 -


내 주님 오시리 확실히 오시리.

내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겠네.

내 구주 예수 확실히 오시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