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복음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사랑은 퇴화된 유전자를 재생시킬 수 있다.

  Trackback

고무진 1 12,238 1999-12-09 10:43


사랑은 퇴화된 유전자를 재생시킬 수 있다.

'사랑'이라는 에너지

뇌 세포로 햇빛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 몸 속의 간세포나, 뇌 세포나, 콩팥세포는 햇빛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세포들에게 햇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사랑이 햇빛과 같은 작용을 한다. 그러나 생쥐의 실험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같은 쥐가 아닌 사람에게 즉, 쥐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에게서 사랑을 받으면 더욱 놀랍게 자라고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사랑도 햇빛처럼 에너지와 같은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입자로서의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햇빛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청명한 날 밖에 나가면 내가 안 받으려고 해도 나에게 비쳐지지만,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내가 싫다고 하면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햇빛 에너지는 인격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비해,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사랑의 에너지는 하나의 입자로서도 작용하여 신경세포가 자라는데 필요한 성장 호르몬을 생산하는 세포핵 속의 유전인자를 자극하므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여러분이 누구인지도 알고 여러분 뇌신경세포 속에 성장 호르몬을 생산하는 인자를 찾아가서는 그것을 자극하여 세포를 다시 성장시켜 준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혹은 '나'라는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또는 '나'라는 인간이 가지는 어떤 감정이 아니라 '나'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독립된 인격체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세포가 그 사랑의 영향력을 받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다. 제가 지금 하는 말을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로 들으시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들으시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되고, 그의 사랑이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켜주시는 그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전도를 해서 교인을 얻으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도 광자처럼 건강 입자 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사랑을 주고받는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입자' 즉 에너지를 받았거든요. 그러고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로 그 사랑의 본체를 만나 뵈었으니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났던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대 물리학으로 봐도 그 성경기록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대단히 과학적임에 틀림이 없다.


사랑의 손길과 몸의 반응

그런 면에서 우리가 형제끼리 '서로의 질병이 낫도록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병든 세포를 고쳐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우리는 기도한다. 사랑의 그분은 여러분이 잠든 동안에 깨우지 않고 여러분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병든 세포를 회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기도를 얼마나 진심으로 하느냐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진실이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기도해 준다면 좀 이상하지 않는가?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는 사랑의 존재가 있다면 그는 바보일 것이다. 사랑이란 마음과 마음으로, 영과 영으로 통하고 반응한다.

뉴스타트 수양원에 가시면 봉사자들은 기도하고 환자들의 몸을 마사지 해 드린다. 그들이 하는 마사지는 기술적으로는 엉성하고 부족하지만, 봉사자들은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도록 도우려고 한다. 그러한 봉사자들의 진정 어린 손길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세포가 전달된다. 그리고 환자가 봉사자들의 진심을 받아들일 때 세상 어느 곳에서 받는 마사지보다도 더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를 위하는 진심 어린 사랑이 봉사자들의 손끝을 통해 들어가 환자의 병든 세포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 때의 치료결과는 여러분이 드신 어떤 약보다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깨끗한 공기, 햇빛, 물, 음식들은 금전으로 따져서는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엇보다도 귀중한 인간의 생명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급으로 살아보자는 것이 뉴스타트 운동인 것이다.

여기에 건강이 필수 요소이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돈으로 할 수 없다. 돈으로 하는 사랑은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같이 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은 가치도 없고 능력도 없다.

우리는 사랑을 연습해야 한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것을 쑥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거짓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섬길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약이 거기 있다. 한 번 실천해 보라.

뉴스타트는 어떤 사람이 고안해 낸 하나의 치료법이 아니다. 사람과 모든 생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원리적 섭리를 따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고 무시했던 것이지만, 창조주의 방법이야말로 인간을 질병과 타락과 절망에서 우리를 생명으로 환원시켜 줄 수 있다. 이것은 너무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우리가 생소하게 생각하는 이러한 진리를 체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은 생명의 길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가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받고, 정말 느껴야 할 것을 느끼고, 정말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세포가 만족할 때만이 우리 몸은 정상적인 생명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취급받을 때처럼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이때 종종 착각이 일어나곤 한다. 돈이 있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존재로 대접받는 듯이 생각한다. 사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이 많고 적음은 중요할 것이다. 반대로 돈이 많은 것이 원인이 되어 갈등과 미움과 죄악 속에 휘말리기도 한다. 돈 많은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아들도 있다. 그래야 상속을 받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돈 때문에 아버지가 '빨리 없어졌으면 좋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정말 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나의 세포가 느끼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은 어떤 순간인가? 그것은 내가 남을 사랑할 때이다. 내가 남을 사랑할 때처럼 내가 남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가질 때는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있다는 확신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할 때, 다시 말해 남을 위해서 진정 어린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 내 자신의 세포가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궁극, 즉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세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인 것이다. 내가 비록 병들었더라도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겠다. 그 사랑의 기도는 상대방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역사 시킴과 동시에 나의 병든 육체에도 사랑의 에너지를 넣어주는 길이다. 내가 타인을 사랑하면 내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것을 아시는가?
사랑은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고 무한하신 사랑의 존재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의 세포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은 퇴화된 유전인자를 재생시킬 수 있다.

'사랑'이라는 존재 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방사선이 있다고 하자. 방사선은 근육을 뚫고 뼈를 통과해서 몸 속으로 들어가서 암세포를 죽인다. 에너지가 아니고서는 무엇을 파괴할 수가 없으므로 방사선은 에너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방사선이 정확히 암세포만 가려서 죽이면 좋을 텐데, 암세포 주변에 사는 사랑하는 세포의 핵산까지도 파괴하는 것이 문제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사람이 머리카락이 빠진다면 그것은 모근세포마저 죽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물론 나중에 재생합니다만) 왜 그럴까?
햇빛이나 엑스레이나 방사선이나 모두 인격성이 없기 때문에 애정을 가지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망가뜨리고, 변질시키고, 퇴색하게 한다.

그러나 사랑은 고도의 인격성을 지니고 생각하는 에너지이다. 다시 말해 뭐가 뭔지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사랑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면, 비 활성화되어 잠자고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 몸의 사랑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유전인자를 깨우기 위하여 어떤 핵산을 자극해야하는지를 안다는 말이다. 고도의 기술과 능력을 갖춘 과학자도 할 수 없는 것을 사랑은 간단히 해낸다. 그만큼 우리 몸 속에서 사랑은 절묘한 인격성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센티멘탈 한 감정이나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실제로 존재하는 에너지이며 우리는 그것에 의존해야만 한다. 엑스레이나 방사선처럼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까지 알고 있는 에너지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성경에도 분명히 밝혀져 있다.

먼저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요일 4:18)고 했다. 이것은 사랑이 인격체임을 보여준다. 고전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더욱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이 말씀을 '사랑하는 행위를 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혹은 '사랑을 하면 오래 참게 된다'라고 단순하게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고, 사랑은 오래 참고, 무례하게 행치 않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분, 하나님 이라는 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정확하게는 '사랑이라는 인격체는 두려움을 내쫓아 주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라고 써 놓았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라고 말한다. 세상의 어떤 책을 봐도 이렇게 써 놓은 책은 없다. 다만 성경만이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하나의 인격체로 파악했다. 사랑을 인간이 가진 하나의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로 그리고 우리에게 올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 에너지로 확실히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상당히 잘못 인식하고 있다. 요즘 사랑이라든가 하나님 이라는 말을 쓰면 대개는 진부하게 여긴다. 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하거나 중요시하더라도 그 의미는 왜곡되어 있기 십상이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분, 하나님 이시라는 분이 분명히 존재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그 인격체의 에너지가 내게 전해졌을 때, 그분에 의해서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된다.


사랑과 유전인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세포 속에 유전인자를 이루고 있는 핵산이라는 것이 파괴 되었다가도 스스로 회복되는 것이라고 알았다. 사실 핵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전해져야 파괴되었던 핵산이 다시 회복된다. 반대로 핵산이 온전히 있다가도 엑스레이 같은 에너지가 오면 파괴된다. 왜 그럴까? 핵산은 다만 물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핵산이 파괴되거나 회복되는 현상은 외부에서 핵산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에너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보자. 감기 바이러스, AIDS바이러스 등등의 바이러스는 산 것일까? 죽은 것일까?

살았다고 해 보자.그러나 바이러스라는 것을 자세히 보면 살아있다는 말이 이상해진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란, 겉에 단백질 껍데기가 있고(바이러스 캡슐) 그 껍질 속에 DNA 즉 핵산이 들어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위장이나 뇌도 손발 없는 물질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이러스를 살아있다고 말한다.

핵산이 복잡하게 질서를 달리해서 절묘하게 구축되어 있는 것이 사람의 몸이다. 사람은 뇌가 있어 생각하고 분석하니까 살아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뇌라는 것도 결국 뇌신경 세포의 집합체이고, 뇌 세포를 분석해보면 단백질 껍질 속에 염색체, 유전인자가 나오는 핵산일 뿐이다. 역시 물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생물체라고 하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본단위의 정체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움직이는 것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움직인다고 해서 모두 살아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 물질을 움직이고 활동하게 하는 것이 에너지이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우리 몸의 세포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드리면서 예로 들었던 뻐꾸기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갓 태어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들을 필사적으로 둥지 밖으로 밀어내 없애버리는 것은 무엇을 알고 행동하는 것일까? 아니다. 단지 자기 의지에 의해 뻐꾸기는 움직이는 것이다.
바이러스를 보자. 바이러스가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일 뿐이니까 사실은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움직이고 특정한 역할까지 한다.

우리 사람도 엄밀히 분석해보면 물질로 구성 체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움직이면 '살았다'고 하고, 안 움직이면 '죽었다'고 판단해 버린다. 자! 여기 화분에 국화가 있는데 잎사귀에 힘이 없다. 목이 말라하는 증거지요. 물을 주면 곧 잎사귀가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올린다. 여러분, 이 잎사귀가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문제가 복잡해지지요. 잎사귀는 줄기에 붙어서 단순히 기계적인 작용으로 물을 흡수해 올릴 뿐인데 그것을 살았다고 그러거든요. 저는 성경을 볼 때 자꾸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해서 혼란에 빠지곤 한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여러분! 사람들을 모아놓고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다. 산 사람들에게, 그것도 금방 아침식사까지 했을 사람들, 움직이고 듣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희들은 죽은 자들이지만, 내 말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은 산다고 말씀하신다. 그 뿐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람이 살아있어도 죽었고, 죽었어도 살았다. 이런 개념은 첨단 과학으로 볼 때도 옳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무덤 속에 있는 사람까지 듣는다는 말씀이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 그것은 우리 방식대로 '죽었다''살았다'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살아도 죽었고, 죽어도 살았다'라는 개념은 첨단과학으로 볼 때도 옳은 말이다. 결국 우리가 숨쉬고 먹고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물질의 움직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차원에서 생명이 무엇인가를 아직도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뻐꾸기 새끼의 의식이 있어서 다른 알을 밀어내어 깨어버리는 것일까? 인간의식 차원에서 보면 그것을 의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 여기 막 생산공장에서 나온 신품 자동차가 있다. 그 자동차는 엔진에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액셀레이터를 밟으면 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우연히 자동차에 끼여있는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고 이것저것 만지다가 기어를 넣었다. 겁이 난 아이는 그냥 자동차 밖으로 뛰어나와 버렸다. 그러자 자동차가 혼자서 움직여 나간다. 이 자동차가 움직인다고 해서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단지 강철덩어리일 뿐이다. 그리고 움직이는 자동차는 어떻게 될까? 틀림없이 얼마 못 가서 집을 들이받거나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할 것이다. 결국 물질이 움직이게 되면 싸우고, 죽이고, 부시고 하는 결과밖에 없단 말이다. 그러나 만약 자동차에 생명이 있다면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동차의 생명의 본체는 무엇입니까? 그 자동차 자체가 아닌 자동차를 움직이는 운전사가 곧 그 차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에 운전사가 들어가서 조정을 하면 그 물질은 사고를 내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사람도 이와 같다. 내 속에 나를 움직이는 운전사가 있을 때 싸우지 않고, 죽이지 않고, 부서뜨리지 않는다. 우리 사람의 운전사는 곧 사랑이라는 인격체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신다. 살아있는 사람도 죽었다고 하시는 이유도 사람 속에 진리가 없으면 서로서로 죽이는 마치 운전사 없는 자동차와 같다는 것이다. 서로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고, 화만 낸다면 우리 몸이 어떻게 되겠는가? 병들게 되지요, 병이 안 든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다.

핵산의 생명활동과 사랑

우리 몸이 사랑이란 에너지, 그 인격적인 존재를 받아들이면 몸 속의 핵산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생명체가 떠나면 핵산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렇다. 설령 우리가 지금 파괴되어 가는 핵산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여러분이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핵산은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드리겠다. 핵산에 공기와 물과 사랑이 공급되면 영원토록 자신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암세포를 연구하던 의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암세포 분열을 연구하려면 사랑한 정상세포에서 배양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하면 처음 하나이던 세포가 둘이 되고, 두개가 넷으로 분열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건강한 세포가 60번을 분열하면 성장을 멈추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학자들의 생각으로는 세포란 늙어 기진 해서 죽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사랑하고 생생한 세포도 60번을 분열하고 나면 어김없이 죽어버린단 말씀이다. 마치 세포 속에 시계가 있어서 그 시간이 되면 정확히 죽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세포의 수명이 일정하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생명의 한계를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 수명마저도 다 살지 못하고 병들어 죽는다. 만약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라고 한다면 99살쯤 살고 난 후에는 이제는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세포가 알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런 수(樹)를 누린 사람이 많았다. 병들어 죽는 게 아니라 수명이 다해서 죽는 거지요. 세계적인 장수국가로 알려진 훈자 국의 노인들을 보면 100살을 훨씬 넘게 살다가 어느 날 저녁식사 잘하고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앰불런스 타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서 장기간 입원하고, 고통에 시달릴 일이 없는 거지요.

그 나라는 가난해서 술도 안 마시고, 적게 먹고, 또 인심이 좋아서 서로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세포는 수명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것을 소위 자연사라고 한다.

죽는 세포와 죽지 않는 세포

암세포를 연구하던 의학자들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어도 세포가 60번 분열 후에는 죽어버려 세포가 변질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한 일은 암세포로 변질된 세포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세포가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의학자들은 세포가 계속 분열하고도 살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한 세포가 왜 죽는지, 그리고 암세포는 왜 안 죽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상세포와 암세포는 근본적으로 유전인자의 구조가 달랐다. 정상세포 속의 유전 인자 중에는 60번 분열을 하고 나면 그 세포를 죽여버리는 특수한 인자가 있어 세포를 일정한 수명이후에 죽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유전인자만 없으면 세포는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상세포 속의 세포를 죽게 하는 유전인자만 제거하면, 세포는 영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포의 영생 화라고 한다.

마침내 의학자들이 세포가 죽지 않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의학용어로는 이 인자를 장수인자라는 뜻의 롱제비티 진(Lon하나님하나님evity 하나님en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는가? 왜, 세포를 죽이는 인자를 '죽음의 인자'라고 불러야 할 텐데,'장수인자'라고 부를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 사랑한 세포가 있다고 하자. 학자들이 세포에서 장수인자를 뽑아내면 그 세포는 아무리 오래 분열, 증식해도 죽지 않고, 결과적으로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가정 해 보라. 아마 '뉴스타트'고 뭐고 필요 없을 것이다. 술 마실 사람은 계속 술 마시고, 기름진 음식을 계속 즐기고,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해버리겠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계속 관찰해 보았더니,'장수인자'를 뽑아낸 세포는 모든 조건이 맞는 시험관, 즉 모든 영양소의 밸런스가 맞고 공기오염이 없고, 습도와 온도가 맞을 때만 영생할 수 있었다. '장수인자'를 뽑아낸 세포는 조금만 부실한 상태에 처하면 금방 암세포로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다.
알고 보니 정상세포 속에 있는 '장수인자'는 사실은 세포를 죽이려고 존재하는 인자가 아니라,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존재이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수인자'가 곧 '항암 인자'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수하는 인자'라는 뜻의 롱제비티 진이라고 붙인 것이다. 왜 이러한 모순이 생겨났을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사람은 영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 삶의 환경을 망가뜨렸다.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서로 서로 섬기는 대신, 서로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갈등과 미움 속에 허덕이게 되었다. 우리의 세포에 '장수인자'를 생기게 하지 않아 금방 암에 걸려서 죽게 된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을 운명이 된 것을 사실 벌을 받았다기보다는,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존재, 유한한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을 그 수한 동안이나마 사랑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장수인자=죽음의 인자'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심하게 인간을 살리시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이 그래도 자기 수명을 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죽음의 인자'를 주신 것이다. 결국 알고 보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 때문에 몸의 세포가 견딜 수가 없어 암세포로 미쳐버릴 수밖에 없을 때, 이 '죽음의 인자'가 필사적으로 막아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영생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씀이 철학적, 상징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몸은 영원성을 담을 수 있었던 몸이었다는 것과 또 잘못된 생활 때문에 암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도 이를 가능한 한 막아주시려는 사랑을 현실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준
07-04-14 15:29  
  할렐루야 참진리를 살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주의광대한 창조로부터 식물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인도하시는 전능하신자 찬지간에 충만하신 하나님읠 다시금 생각하게 히시니 감사합나다 우둔한자의 눈을 열어주셔서 참감사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간강하사ㅔ요